[ON+인터뷰┃이병헌①] 대중을 홀린 ‘연기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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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J엔터테인먼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연기로 대중들을 사로잡은 배우 이병헌이 영화 ‘마스터’에서는 수만 명의 회원에게 사기를 치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캐릭터를 맡았다. 이병헌이 맡은 진현필 회장은 온화한 음성과 설득력 있는 말발로 회원들에게 믿음을 준다. 얼토당토 않는 말이지만 그가 하는 말 모두가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데, 그는 조 단위의 사기를 치면서도 여유롭고,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그 누구라도 눈물을 흘리게 된다.

‘사기꾼’보다 ‘교주’에 더 가까운 진현필이란 인물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은 연설신으로, 이병헌과 조의석 감독이 여러 번 수정한 끝에 완성됐다. 특히 진현필의 첫 등장 신이자 영화 초반 분위기를 만드는 부분으로, 관객마저 영화에 쏙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초반에 조의석 감독과 캐릭터에 대해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이야기 했다. 연설 신은 대여섯 번 주고받으면서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지갑까지 훔치려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설문이 중요했다. 관객이 피해자의 심정으로 극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관객들은 이미 진현필이 사기꾼임을 알고는 있지만 ‘회원들이 바보라서 당하는 게 아니라 정말 당할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설득력 있는 연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피해자에게 몰입이 되어야지 분노할 땐 분노하고, 통쾌할 땐 통쾌한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나.”

이 사기꾼 이야기는 실화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지난 2008년 3만여 명에게 5조의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피한 후, 장례식을 치렀다고 알려진 조희팔의 사건이 이 영화의 기본 뼈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 희대의 사기꾼 캐릭터를 맡는다는 것은 이병헌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미 감독님이 조희팔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었다. 실제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피해자들이 분개해하고 있는 사건이 아닌가. 여기에 배우로서는 말투, 눈빛,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천외한 사기꾼을 연기하는 건데, 이건 어떤 배우라도 하고 싶었을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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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자신의 뒤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진현필은 필리핀으로 넘어가는데, 한국에서 느릿한 말투를 쓰던 그는 필리핀에 가면서부터는 필리핀식의 빠르고 강렬한 악센트를 지닌 영어를 쓰기 시작한다. 영어라면, 이병헌이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언어다. 한국영화에서 필리핀식의 영어를 쓰면서 연기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역시 이병헌은 필리핀 특유의 악센트를 잡아내어 신을 강렬하게 만들었다.

“필리핀 배우들에게 감정 실어서 읽어서 녹음해서 달라고 했다. 한 명만 하면 객관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 세 연기자한테 받았다. 그중에서 너무 오버되지 않는, 중간 정도의 악센트를 가지신 분의 것을 따라하면서 연습했다. 처음엔 이걸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공식이 있더라. 공식 찾고 나서는 다른 대사가 주어져도 필리핀식으로 할 수 있었다.”

진현필은 확실히 악역이다. 하지만 앞서 그가 출연했던 영화 ‘악마를 보았다’ 등에서 봤던 잔인한 장면은 없다. 청부살인을 주문할지언정 그것이 자세히 드러나진 않기 때문이다. 대신 금융 사기꾼이자 진현필만의 악역을 그려내기 위해 이병헌은 각종 설정을 집어넣었다. ‘연기의 신’ 이병헌다운 노력과 애드리브로 극은 조금 더 풍성해졌다.

“기본적으로 조의석 감독 영화가 악랄하진 않는다. 경쾌한 템포로 흘러갈 것이라고 미리 예상했었다. 워낙 요즘 영화들이 세다. ‘내부자들’에서도 악역들이 잔인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금융 사기꾼이기 때문에 남의 마음과 돈을 훔치는 것이지,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과 같은 캐릭터는 아니다. 관객들이 얼마나 흉폭한 것을 예상했을지 몰라도 금융 사기꾼이기 때문에 잔인한 일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 대신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장면인데, 빨간 비트 주스로 상징성을 보여주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비트 주스 마시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데, 비트가 빨개서 입 주변에 묻으면 악마의 이빨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안 묻어서 조합을 여러 번 해서 그 비율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