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유지훈의 힙합읽기] ‘매지리 가는 버스’-U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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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오로지 스웩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이별, 사회 부조리, 자기고백 등 무엇이라도 주제가 될 수 있죠. 여기에 스토리텔링 기법이 더해지면 힙합은 새로운 차원의 음악이 됩니다.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랩퍼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ON+힙합읽기]가 스토리텔링의 묘미를 전해드립니다.<편집자 주>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풋풋했던 스무살,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그리고 지금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리고 두 사랑을 비교하면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UMC의 3집 ‘러브, 커스, 수어사이드’(Love, Curse, Suicide)의 다섯 번째 트랙 ‘매지리 가는 버스’는 어른이 되어갈수록 점점 퇴색되어버리는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땐 죽일 것처럼 니가 미웠지만 이제는 행복하길 바래”라는 다소 과격한 코러스로 시작하지만 결코 과격한 노래가 아닙니다. 우리가 나이 들어가며 잃어버린 사랑의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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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서른 셋 직장인 A입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사내회식, 연말정산과 같은 단어들이 그의 무미건조한 삶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외도를 하는 직장 동료들을 보며 사랑에 대해 고민합니다. “새내기 땐 연애 그렇게 안했었는데”라는 씁쓸한 혼잣말과 함께 말이죠.

A는 메지리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자신의 스무살을 회상합니다. 하루가 1년 같이 무료했던 시절, A는 별다른 고민 없이 B와 연애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적 욕구, 근거 없는 책임감이 B를 대하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B의 어설픈 옷차림과 눈 화장 등을 자세하게 기억합니다. “너는 지금 잘 있니?”라는 따뜻한 한마디에서는 애틋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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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벌스를 통해서는 두 사람의 연애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무살 남녀의 연애는 어떤 시절보다 치열할 것입니다. A와 B는 서로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 애정만큼이나 많은 다툼이 있었죠. 과거의 A는 그 다툼이 커다란 성격차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서는 다르게 바라봅니다. 그 모든 다툼은 사랑에 서툴렀던 스무 살이었기에 존재해야만 했던 시행착오라고 깨닫게 되죠.

디테일한 묘사도 눈길을 끕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할리우드 배우 톰행크스도 직접 언급되지만 영화 제목은 없습니다. 이 앨범의 발매는 2010년 말, 서른셋의 주인공이 스무살을 회상 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캐스트 어웨이’ ‘그린마일’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이 함께 봤던 영화가 아닐까 추측되네요.

시간이 흐르며 두 사람은 더욱 친밀해졌습니다. 대부분의 일을 함께하고 A의 할머니를 만나러가기도 합니다. 할머니와 얽힌, 마지막 네 마디의 랩은 쓸쓸한 감정을 배가시킵니다. A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반짇고리에서 예상치 못하게 A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사진 속 B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합니다. “너 지금도 이렇게 웃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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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벌스는 갈등의 촉발과 해소를 동시에 담습니다. B는 재수에 성공해 학교에 적응했고 A는 음악 활동에 매진하며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A는 B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A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화 한 번 못 내보고” B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입니다.

A는 매 벌스 중간에 담긴 코러스를 통해 B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이 변했음을 털어놓습니다. B의 배신으로 인한 분노와 축복을 반복하죠. 세 번째 벌스 끄트머리가 되자 A는 B를 향한 감정을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스무살이라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함께해준 B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철없이 내쳤던 자신을 한탄합니다.

사랑은 환경과 나이, 가치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띕니다. 나이가 들수록 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나이에 겪은 사랑이 더욱 가치 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막 아이의 티를 벗은 남녀의 사랑은 서툴고 치열하기에 특별한 가치를 지닙니다. 맨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옛 사랑과 지금의 사랑을 비교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혹시 A가 마지막에 마주한 얼어붙은 강물과 무성한 강아지풀과 같은 쓸쓸함이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당신의 매지리로 떠나보세요. 이유는 “차비가 남아서”만으로 충분합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tissue@enter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