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배우 김윤석을 떠올리면 차갑고 강렬한 카리스마가 떠오른다. ‘추격자’ ‘황해’ ‘화이’ ‘해무’ ‘타짜’ ‘검은 사제들’ 등 센 작품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김윤석은 힘을 뺐다. 극중 평생 후회로 남았던 과거의 기억을 돌리기 위해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미래의 수현 역을 맡았다. 젊은 수현의 서툴고 열정적인 모습과 비교가 되어 중년의 수현은 더욱 여유 있는 어른의 모습이다.
특히나 이 작품은 단순 멜로가 아니라 80년대와 2015년을 오가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영화로서 다양한 변주를 준다. 김윤석이 평소와 달리 따뜻한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대본이 주는 힘이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각색이 마음에 들었다. 기승전결이 딱 맞아떨어지더라. 어떤 대본은 ‘기’가 세고 ‘전’이 약하기도 한데, 우리 대본은 하나로 쭉 가는 흘러가는데 잘 배분되어 있었다.”
미래의 수현은 첫사랑 그녀를 잊지 못해 30년이란 세월을 거스른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마음을 드러내며 애틋한 감정을 보여준 그에게 ‘첫사랑’은 어떤 것일까. 애틋할까 아니면 단순히 추억일 뿐일까.
“첫사랑은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럼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싫을까. 첫사랑에게 애틋한 감정이 느껴진다면 행운이다. 첫사랑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깨진다. ‘그땐 바보 같았지’라는 생각이 들지 애틋하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두 번째 사랑이 더 제대로 된 사랑이지 않을까. 오랫동안 만난 사람에게는 잘못한 것밖에 생각난다.”
현재를 살아가는 수현은 죽음을 앞두고 과거를 바라본다. 젊은 시절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딸이 있는 현재다. 젊은 시절과 달리 현재까지 지켜야 하는 중년의 남성의 모습은 애틋하다.
“우리 영화에는 멜로도 있지만, 우정도 부녀간의 사랑도 들어있고, 전체적으로 보면 한 오십대 남자가 자기 인생을 반추하는 이야기다. 나도 그 나이 대이지 않나. 멜로 부분은 변요한이 맡고 있고, 나는 딸과 연기하는 부분이 많아서 사실 부성애 쪽에 더 애정이 갔다.”
김윤석은 딸로 나오는 박혜수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딸이 둘 있다는 김윤석은 실제 딸들에게 어떤 아빠일까.
“극중 딸과 있는 모습은 실제 내 모습이 많이 투영됐다. 내가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된장찌개를 먹고 ‘굿’이라고 말하고, 딸이 없는 모습을 보고 ‘엥?’ 하는 것은 진짜 내 모습이라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웃음)”
“나는 자신 있게 다정하다.(웃음) 내 칭찬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힐링시키는 것 같다. 애들한테 공부하라는 얘기는 안 한다. 나도 공부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웃음) 공부는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취미가 직업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보긴 한다. 둘 다 있다고 해서 밀어주려고 한다.”
그는 가장 인상 깊고 힘들었던 신으로도 딸과 함께 했던 신을 꼽았다. 자신의 병을 딸에게 고백해야 하는 신은 실제 감정이 투영돼 연기하기 쉽지 않았다.
“딸에게 병을 고민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어려웠다. 진짜 아버지라면 딸에게 눈빛을 속일 수 없지 않나. 실제 상황이라면 너무 미안할 것이다. 혼자 두고 떠나야 하니까.”
“그것과 다르게 힘들었던 또 다른 신이 있다. 풍선을 들고 프러포즈를 하는 신이었다. (원래 대본에 없던 신이라) 나는 왜 찍는지 몰랐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꽃다발도 아니고 풍선을 들고 있나.(웃음) 젊은 수현이 이렇게 프러포즈를 했다고 해서 찍어야 한다고 하더라. 심지어 얼굴을 가리라고 했는데, 너무 오래 가리는 것이다. 그럼 관객들이 더 기대하지 않나. 내가 강동원도 아니고. 빨리 넘어가라 싶었다.(웃음)”
김윤석의 우려(?)와 달리 이 영화는 중년의 로맨스까지 볼 수 있어 더 특별하다. 충무로에서 찾아보기 힘든 멜로 영화에 대한 목마름은 올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로 채워질 전망이다.
“완성도 있는 중년 멜로가 나오긴 어렵다. 게다가 이렇게 재밌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이것도 귀하다. 특히 우리 영화는 멜로라는 장르가 들어가 있지만, 억지 신파 없이 담백해서 좋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