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View┃영화] ‘가려진’ ‘판도라’ ‘당신’, 영리한 신인여배우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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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스터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최근 ‘형’의 박신혜, ‘스플릿’ 이정현, ‘아수라’ 윤지혜 등은 극중 홍일점임으로 출연했지만 극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고 남배우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만 만족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들로서 아쉬운 행보다. 이에 비해 ‘가려진 시간’의 신은수, ‘판도라’의 김주현,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채서진은 신인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배우들마저 욕심날 만한 캐릭터를 맡아 극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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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려진 시간'

◇ ‘가려진 시간’ 신은수

‘가려진 시간’은 의문의 실종사건 후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소녀 수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극중 신은수는 성민(강동원 분)을 믿어준 단 한 명의 소녀 수린 역을 맡았다.

‘가려진 시간’은 강동원의 영화로 알려졌지만 사실 진짜 주인공은 신은수다. 극중 유일하게 대중들에게 익숙한 배우 강동원은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40분 후에 등장한다. 이전까지는 아역배우들끼리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 신은수는 초반 40분은 어린 성민(이효제 분), 후반에는 강동원과 호흡을 맞췄다. 3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수린 역을 맡게 된 신은수는 한 번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신인이다. 강동원이 “이전에 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친구인데도 처음부터 잘 했다”고 말한 것처럼 그는 첫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극 전체를 잘 이끌어나갔다.

수린이란 캐릭터는 믿음을 주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 있어야 하는 캐릭터다. 강동원이 상대배우를 처음 본 후 “눈이 정말 좋았다. 영화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사랑을 독차지했던 배우다”며 극찬했을 정도로 신은수는 수린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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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판도라'

◇ ‘판도라’ 김주현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전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로, 극중 김주현은 재혁(김남길 분)의 여자친구이자 발전소 홍보관 직원 연주 역을 맡았다.

김주현은 ‘판도라’의 여주인공이다. 남자주인공 재혁의 여자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다. 김남길이 원전에 직접 뛰어들어 동료들을 구해낸다면, 김주현은 가족들과 주민들을 직접 대피시키고 위로하며 또 다른 구원의 한 축을 담당했다.

김남길부터 정진영, 문정희, 김영애, 김명민, 김대명, 강신일 등 모두가 주연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김주현은 유일하게 신인이었다. 그가 이 정도로 긴 호흡으로 연기하는 것 역시 처음이었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가볍지 않았다. 그는 거뭇한 얼굴에 질끈 머리를 묶고 경상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소화하며 영화의 현실성을 살렸다.

박정우 감독은 김주현을 캐스팅한 이유로 “이웃사람들을 끌고나갈 리더는 재혁의 여자친구이고, 그 여자친구는 새로운 얼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영화에 나름대로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 역만큼은 새로운 얼굴이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남길은 엔터온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주현에 대해 “부담감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자기 롤에 대해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영화가 잘 분배가 된 것 같다. 버스 운전면허도 직접 따고 고생했다”고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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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채서진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10개의 알약을 얻게 된 남자가 30년 전의 자신과 만나 평생 후회하고 있던 과거의 한 사건을 바꾸려 하는 이야기로, 채서진은 수현(김윤석ㆍ변요한 분)이 30년 전에도, 후에도 사랑한 여자 연아 역을 맡았다.

두 수현이 연아를 살리기 위해 연아의 행동을 바꾸고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 나간다. 그 동안 연아는 영문도 모른 채 기다려야 한다.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에 사실, 연아 캐릭터는 소모적으로도 쓰일 수 있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는 두 남자의 중심에서 관계를 아우르고, 국내 첫 돌고래 조련사란 직업을 가진 인물답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홍지영 감독은 채서진을 캐스팅한 이유로 “김윤석이 먼저 캐스팅 되어 영화의 주춧돌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여배우 선택이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여배우들이 귀하고, 나도 관객의 입장에서 새로운 얼굴을 찾는다. 채서진은 부드러우면서도 올곧고 포용적인 느낌이 있다. 고전적인 미인인데, 도시적이면서도 예스러운 느낌이 좋았다”고 전했다.

남성 위주 영화가 많기 때문에 그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부수적인 캐릭터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려진 시간’ ‘판도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속 여성들은 캐릭터가 확실하다. 캐릭터가 살아나자 극 자체도 풍성해지고, 흥미로워졌다.

게다가 유명한 여배우를 캐스팅 했다면 기존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혀야 하지만, 신인을 쓴다면 배우 자체가 영화 속 캐릭터가 된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신인 여배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발굴 자체가 쉽지 않거니와 세 작품 모두 많은 예산이 들어간 큰 영화이기 때문에 흥행을 보장해줄 배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남길이 “투자가 많이 된 작품이다. 나에 대한 캐스팅 반대도 있었다. 돈을 투자한 입장에서는 출중한 선배들이 출연하는 게 안심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신인을 투입시킨다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하지만 감독들은 과감하게 도전했고, 이 도전은 신선함으로 관객을 이끌고 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