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엔터온뉴스 백융희 기자] 연출진의 구성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순간이다.
지난 1일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 공연이 대구에서 막을 올렸다. ‘지킬앤하이드’는 상반된 두 가지 인격을 지닌 주인공과 그를 사랑하는 두 여인의 비극적 로맨스가 더해진 아름다운 스릴러 작품으로 한국에서 10연 년이 넘는 기간동안 공연됐다. 한 인간의 양면성을 다룬 소재만으로 관객의 흥미를 끌었고 몇몇 멜로디 넘버는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는 한국 공연을 이끌어 온 제작사 오디컴퍼니를 필두로 리드 신춘수 프로듀서, 데이비드 스완 연출 등 한국의 크리에이터 스태프와 브로드웨이 배우들이 함께하는 새로운 방식의 프로덕션으로 구성됐다.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에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단연 캐스팅 라인업이다.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에 걸친 브로드웨이 현지 오디션을 진행했고 지난 8월 월드 투어 캐스팅을 확정했다. 외국 유명 뮤지컬 배우인 브래들리 딘, 다이애나 디가모, 린지 블리븐, 카일 딘 매시를 캐스팅했다.
세계진출을 목표로 한 만큼 브로드웨이 유명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점이 흥미롭다. 기존의 한국 공연을 봐오던 관객을 위해 새로운 방식의 프로덕션 기획을 추가한 것이 눈길을 끈다. 기존의 합작 공연은 창작진이 브로드웨이 스태프로 구성됐지만, 이번엔 한국 창작진이 주가 돼 한국 정서에 맞는 공연을 펼쳤다.
기존에 은유적으로 표현한 가사와 대사를 직설화법으로 살려냄으로 극 중 인물들의 삶과 감정을 관객에게 바로 전달했다. 이번 월드 투어 버전은 기존 ‘지킬앤하이드’ 공연에서 삭제한 일부 장면이나 대사를 추가했다. 이 점은 외국 배우들의 영어 대사와 노래를 한국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불편함을 줄이는 효과를 줬다. 직설적으로 떨어지는 대사는 관객이 무대 양측에 설치된 자막과 배우들의 연기를 동시에 보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큰 무대에서 집중도를 살린 구성도 눈에 띄는 점이다. 2층 구조를 기본으로 한 다이아몬드 형으로 관객의 몰입을 높였다. 하이드 캐릭터가 탄생하는 지킬의 실험실은 2층 높이의 꽉 찬 실험 도구들이 조명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했다. 또 지킬의 실험실과 집, 루시의 클럽, 영국의 거리 등 매 장면마다 다른 공간에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의상은 빅토리아 시대의 섬세하면서도 클래식한 감성이 담긴 의상들로 선보였다.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 발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대영제국의 절정기로 우아한 어깨 곡선, 코르셋으로 조여 가느다란 허리, 크게 부풀린 소매 등 로맨틱하면서도 화려함이 가미된 의상들이 주를 이룬다. 이처럼 고전 의상이 갖는 우아함과 과시적인 행태의 시대적 특징이 표현된 의상은 사실적이기에 오히려 환상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이번 공연의 최고 수혜자는 지킬/하이드의 연기를 보여준 브래들리 딘이다. 풍채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파워풀한 목소리로 새로운 지킬/하이드를 탄생시켰다. 무대 안에서 순간적으로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고통에 빠진 그의 광기어린 모습은 공포감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특히 ‘디스 이즈 더 모먼트(This is the moment)’ 넘버는 관객의 가장 많은 환호를 끌어낸 순간이었다. 익숙한 연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집중하기 시작했고 브래들리 딘이 새롭게 선보이는 ‘디스 이즈 더 모먼트’에 완벽하게 매료됐다. 이 넘버는 ‘지킬앤하이드’ 배우가 이 곡의 무대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원어로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은 외국 가사와 상관없이 감정만으로 전율을 일으키게 했다.
탄탄한 실력을 기본으로 완벽한 군무와 합창을 선보인 앙상블 배우들까지 뮤지컬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들을 최상의 클래스로 조합해 대중성까지 겸비했다.
지난 7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 기자간담회에서 신춘수 감독은 스타에 의해서 뮤지컬 공연의 흥행이 좌우되는 한국 뮤지컬계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번 공연 출연진은 보두 브로드웨이에서는 정상급의 배우들이지만, 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다. 따라서 온전하게 작품성으로 평가 받을 수 있고 배우들이 가진 것을 편견 없이 볼 수 없는 기회가 됐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백융희 기자 historich@enter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