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최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혼술남녀’ 시청자라면 배우 하석진이 다른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본명 대신 진정석 또는 ‘고쓰’(고퀄리티 쓰레기)가 먼저 떠오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하석진은 ‘혼술남녀’에서 교만한 성격의 1등 스타 강사 진정석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마치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것처럼 드라마 속에서 그렇게 입에 달고 다니던 퀄리티를 연기력으로 직접 보여줬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하석진은 머리에 한껏 힘을 준 진정석이 아닌 평상시 하석진 본인의 모습이었다. 드라마가 호평 속에 끝난 덕분인지 그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혼술남녀’ 관련 기사도 많이 나왔고, 매회 마다 시청자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내주신 덕분에 더욱 힘내서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모든 출연자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전부 잘 살려서 연기한 덕분에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하석진이 연기한 진정석은 한 마디로 싸가지 없는 성격을 가진 캐릭터다. 남을 위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오로지 허세로 가득 찬 인물인 탓에 동료들로부터도 손가락질 받기 일쑤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진정석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하석진은 진정석을 단순히 재수 없는 스타 강사가 아닌 중독성 강한 코믹한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눈에 띄었던 건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동료 강사를 쫓아내는 장면이었어요. 임팩트가 큰 장면이었는데 마냥 재수 없게 보이지 않고, 코믹한 못됨으로 표현돼서 다행이었어요. 현실 속에서 이런 인물이 실제로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못되고 이상한 역할이라 촬영하면서도 재밌었죠. 진정석이 박하나(박하선 분)를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옷을 굉장히 화려하게 치장하고, 말도 안 되는 머리 스타일로 동료 교수 결혼식장에 나타났던 장면도 많은 분들이 정말 재밌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혼술남녀’는 거의 대부분 진정석의 혼술(혼자 술 마시는 행위) 장면으로 시작됐다. 다양한 고급 안주와 함께 여러 가지 종류의 술을 마시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하석진은 실제로는 혼술보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술 마시는 걸 더 좋아한다며, 극 중 혼술을 즐기는 진정석과는 일정 부분 다른 점이 있다고 털어놨다.
“진정석은 주말에도 스페인 음식점에 차려 입고 가서 술을 마시는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에요. 혼술도 잠들기 전 가끔씩 하는 편이죠. 혼술 신을 촬영하면서 데낄라부터 고량주, 소주, 복분자주 등 정말 다양한 술을 많이 마셨는데 맥주 마시는 장면을 찍을 때는 몸에서 술을 안 받는 바람에 화장실 가서 게워내고 다시 마셨던 기억도 있어요. 가짜 맥주(무알콜)보다 진짜 맥주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오다보니 진짜 맥주를 먹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혼술 신은 항상 마지막에 촬영했는데 맛있는 안주를 먹을 수 있으니까 기분 좋게 촬영 마치고 퇴근했던 것 같아요. 드라마 촬영하면서 혼술 신이 있는 날은 아예 밥을 안 먹고 갔어요.”
드라마 속에서 진정석은 친동생 진공명(공명 분)과 함께 살았다. 본인의 퀄리티가 떨어질까 공명이 동생인 것도 밝히지 않았던 그는 박하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려고 했다.
실제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 것 같은지 묻는 질문에 하석진은 한참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형제가 없어서 모르겠다고 말했다.
“형제가 없어서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게 친구라면 포기할 것 같아요. 우정은 10년 동안 지속됐던 거고, 파릇파릇 솟아나는 애정은 상대적으로 우정보다 작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공명이가 5년 정도 넘게 바라본 짝사랑을 겨우 이룰 때가 됐는데 가까운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걸 채가려는 건 문제가 있겠죠. 하지만 이 정도의 경우라면 우정을 선택할 것 같아요. 다만 공명이 캐릭터는 형의 입장으로 연기를 할 때 철이 없다고 느껴진 부분도 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뭔가를 이뤄야 하는 친구가 그걸 도와주는 선생님을 좋아하고 철없이 구는 모습은 형의 입장에서 볼 때 많이 갑갑했습니다.”
‘혼술남녀’에서는 공시생 3인방(김동영, 공명, 키)과 정채연 등 나이 어린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하석진 역시 이들의 연기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들 정말 잘해서 놀랐고, 부럽기도 했어요. 만약 제가 저 나이 때 이 친구들만큼의 열정이 있었다면 지금쯤 저는 훨씬 훌륭한 배우가 됐을 거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동영이야 워낙 경력이 많은 친구고, 기범(키)이나 공명이 같은 경우는 어디서 이런 원석을 발굴했나 싶을 정도였죠. 실제로 함께 연기해보니까 호흡도 좋고 대사도 잘 치고 정말 잘하더라고요. 앞으로 이 친구들에게 더 좋은 제안이 들어올 것 같아요.”
현재 방송 중인 리메이크 드라마 ‘1%의 어떤 것’에 배우 전소민과 함께 주연을 맡았던 하석진은 ‘혼술남녀’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전소민과 재회했었다.
당시 두 사람은 환상적인 호흡으로 연기를 주고받았고, 특히 하석진은 랍스타로 머리를 얻어맞는 명장면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전소민 씨와는 ‘1%의 어떤 것’ 촬영할 때 끊임없이 대사를 맞춰보고, 쉬지 않고 같이 연기하다 보니까 ‘혼술남녀’에서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호흡이 정말 잘 맞았어요. 전소민 씨가 카메오로 캐스팅돼서 너무 긴장된다고 말했지만 잘해낼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실제 촬영 들어가자 랍스타로 찰지게 제 머리통을 때리더라고요. 그때 머리에서 피까지 났어요.(웃음)”
하석진에게 ‘혼술남녀’는 어떤 드라마였을까.
“‘혼술남녀’가 어떤 거창한 기획 의도를 갖고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잠자기 전 켜놓고 보면서 낄낄 대고 웃을 수 있는 술안주 같은 드라마죠. 심오하게 사회 문제를 짚기 보다는 치열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 시청자들을 위로해주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위로보다는 짜증을 유발했지만요. 제가 전소민 씨에게 랍스타로 머리 맞을 때 속 시원했다는 의견도 많이 봤거든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