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기술 강국이다. 그 뿌리를 찾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마이스터`다.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온 기술과 기능 인력 양성 제도다. 전문 기술인을 존중하는 독일인의 인식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자동차, 카메라, 의료, 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독일을 탄생시킨 근간이다.
기술력만 놓고 보면 우리도 남부럽지 않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뿌리인 전문 기술인에 대한 인식은 한참 뒤처졌다. 기술 강국이란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열악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돌이`란 말로 기술인의 폄하를 서슴지 않는다. 전문 기술인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는 때때로 갈등으로 이어진다.
정보통신공사업계가 갈등의 경고음이 새어 나오는 대표 분야다. 정보통신공사는 건물을 지을 때 통신 네트워크와 방송 시스템 등 ICT 인프라를 구축한다. 통신사업자 전국 통신망 설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정보통신공사업체라는 전문 기술인 집단이 이 영역을 맡아 공사 품질을 확보한다. 정보통신공사업법에는 건설 공사와 정보통신 공사를 따로 발주하도록 못을 박았다. 법 규제로 ICT 전문성을 건물에 녹여 내자는 취지다.
하지만 현실은 법과 궤를 달리한다. 공공건설에 정보통신 공사를 포함해 입찰하는 `통합 발주` 관행이 끝없이 이어진다. 정보통신 업계의 반발은 거세다. 발주처인 공공 기관은 온갖 예외 규정을 들어 통합 발주 입장을 고수한다. 관행과 편의라는 명목이 한몫한다.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정보통신 공사 업체는 하청업체로 전락한다. 전문성을 살리자는 법의 취지가 무색하다.
사물인터넷(IoT) 확산으로 건축물도 스마트 빌딩으로 탈바꿈하는 시대다. 그만큼 ICT의 중요성은 높아졌다. 스마트 빌딩의 핵심이 될 정보통신 공사는 정보통신 사업체에 돌아가야 한다. 전문 기술인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 기술 강국의 미래는 없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