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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영화 ‘아수라’ 오픈토크에서 배우 정만식은 “영화를 찍을 때는 액션신 때문에 다쳤었다. 그런데 찍고 나서도 두드려 맞고 있다”며 마음고생하고 있음을 전했다. ‘아수라’가 지나친 욕설과 개연성이 없다며 혹평을 받고 있는 것을 우스갯소리로 승화시켜 말한 것이다.
‘아수라’는 개봉 첫 날 47만 명을 모으며 청불 영화 역대 오프닝 스코어 중 최다 관객수를 기록했고, 3일 만에 180만 명을 모으면서 천만 영화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흥행이 예상됐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개봉 6일 만에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게 1위를 내줬고, 개봉 9일 차에는 ‘맨 인더 다크’에게 2위 자리까지 내줬다.
1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아수라’은 지난 13일 하루 동안 전국 374개의 스크린에서 6368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8위를 차지했다. 누적 관객수는 255만 명이다. 결국 ‘아수라’는 개봉 3주 차에 박스오피스 8위로 떨어지면서 손익분기점인 350만 관객을 모으는 것마저 벅찬 상황이 됐다.
‘아수라’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악인들의 전쟁을 담은 범죄액션 영화다. 많은 관객들이 이야기 한 대로 ‘아수라’는 욕설이 난무하고, 고어물(gore movie) 수준으로 잔인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기자 시사회 종료 이후 김성수 감독이 “힘든 영화 보시느라 고생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어물 자체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비대중적인 장르이기에 많은 관객이 보게 되는 상업영화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수라’의 제작자인 한재덕 대표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본 후 이미 청소년 관람 불가 작품으로 생각했고, 감독 역시 19세 관람가 영화로 만들었다.
잔인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관객은 이들이 펼치는 폭력적인 세계가 멋있지도 않고 시원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한 캐릭터를 지적하는 관객도 있다. 끊임없이 나쁜 일을 일삼고, 멋있지 않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우성은 “한도경은 현실에 떠밀려서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 가는데, 현재보다 더 나빠지지만 않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내리는 판단들이 맞는지 스스로 질문하면서 우유부단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영화 속 주인공의 명석함이나 주도적인 행동들은 없다”고 이야기 했다.
다만 한도경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기도 하고, 두 악의 축인 박성배(황정민 분)과 김차인(곽도원 분)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며 재미 포인트를 만든다. 한도경은 영화 '밀정'보다 '밀정'이란 제목이 더 잘 어울릴 만큼 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그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긴장감을 자아내는 순간 마침내 "당신들끼리 알아서 하라"며 둘을 두고 나가버리며 예상치 못한 웃음을 주기도 한다.
한도경 캐릭터뿐만 아니라 ‘아수라’에 등장하는 인물은 형사, 검사, 시장 등 다양하지만, 모두 ‘나쁜놈’으로 귀결된다. 정우성은 “여태껏 보여준 느와르와 '아수라'가 다르다. 대부분의 느와르는 낭만도 있고 의리도 있었는데 '아수라'는 없다. 어떤 악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아수라'의 메시지이며, 영화적 기법에서의 현실 투영이다“고 말했다.
김성수 감독은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시시한 악당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인물을 내세워 절벽 끝까지 밀어붙이고 절벽 끝에 도달해서 자기 주인을 물어뜯는 장면을 생각했다. 그래서 일반 액션 영화의 선악구도보다 온전히 악인들만 등장하면서 정의는 발붙일 틈이 없는, 폭력의 먹이사슬이자 악인들의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관객은 지독하게 나쁜 일을 일삼는 인물들의 행동에서 개연성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가상 도시인 안남시가 ‘지옥’으로 설명되는 것처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물 역시 ‘악인’이 되어 나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이면서도 가상 세계라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뷰티인사이드’에서 우진의 얼굴이 매일 바뀌지만, 그 원인을 설명하면서 개연성을 찾지는 않는다. 이미 상황은 부여 됐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만약 ‘아수라’에서 인물들이 나쁜 일을 하는 원인을 일일이 설명해줬다면 어땠을까. 누구는 배신을 당해서, 누구는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너무나 많이 봐왔던 장면이 아닌가. 그래서 감독은 이 장면들 대신 이 악인들이 어디까지 가는가, 그리고 이 사람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집중했다.
원인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아수라’는 나쁜 놈들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 비쳐지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멋’을 위한, 개연성 없는 조각들이 아니다. 감독도 이들의 행동을 절대 옹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죽는 엔딩 장면에서 카메라는 죽은 사람들을 훑어본다. 특히 그들의 눈을 강조하는데, 선에서 악으로 변해갔던 선모(주지훈 분)를 제외한 나머지는 눈을 뜨고 죽는다. 나쁜 일을 했던 이들이 편하게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감독이 설명적인 부분이라며 마지막 한 컷을 삭제한 채로 영화를 완성했지만, 사실 영화의 마지막 신은 정우성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하면서 마무리 된다. 죽은 한도경(정우성 분)의 눈에는 어떤 이가 들어차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도경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흐르는 한도경의 내레이션과도 연관되어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이 자신과 주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악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길 바랐던 선모부터 그가 충성했던 시장 박성배, 그를 막아섰던 김차인 등 모두가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앞서 ‘아수라’를 본 토론토 국제영화제 아시아 수석프로그래머 지오바나 풀비는 “인간의 나약함과 부정함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영화다.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라 할만하다”고 말했고, 우디네 극동영화제 프로그래머 사브리나 바라체티는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폭발적인 흡입력은 숨을 멎게 할 만큼 아주 강렬했다”고 말했으며, 태국 배급사 엠픽쳐스 배급 담당자 지라신 자루폰차이는 “악인들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