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스포츠’라이트|정우영②] “최고ㆍ1인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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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우영 SNS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지난 2003년 MBC ESPN(現 MBC스포츠플러스)에 입사해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첫 발을 내딛은 정우영은 10년 동안 다양한 종목을 중계하며, 본인의 가치를 높였다.

지난 2014년에는 10년 동안 몸 담았던 MBC스포츠플러스를 떠나 SBS스포츠에 새 둥지를 틀었고, 현재는 SBS 지상파 방송에서도 프로야구 중계를 책임지고 있다.

“MBC스포츠플러스를 떠나는 건 저로서도 정말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워낙 좋은 대우를 받았고, 입사 때부터 퇴사 때까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제게 보여줬던 회사였으니까요. 퇴사하던 해가 제가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던 해였는데 그때 여러 가지 다양한 제 미래를 그려보다가 한 번 도박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던 차에 SBS스포츠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이직을 결심했죠.”

정우영이 경쟁사로 이적하자 일부 누리꾼들은 그가 SBS스포츠에서 1인자 아나운서로 거듭나기 위해 MBC스포츠플러스에서 나왔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MBC스포츠플러스에는 한명재라는 걸출한 스타 아나운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손을 내저은 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이러한 추측들을 일축했다.

“저는 (한)명재 선배에게 방송을 배운 사람입니다. 한명재라는 분이 없었다면 존재 자체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저는 라이벌로 불릴 수도 없죠. 어제도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데 주변에서 왜 싸움 붙이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스포츠 캐스터 분들 대부분은 모두 이직 경험이 있어요. 저는 단지 그 시기가 남들보다 늦었기 때문에 제 이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는 거라 생각해요. 저는 정말 전 회사를 나오는 순간까지 모든 이들과 즐겁고 화목한 생활을 했어요.”

이어 1등과 최고만을 강조하는 현 시대의 풍토에도 일침을 가했다.

“어떤 일이든지 정말 1등, 1인자, 최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세상에 1등만 중요하면 이 세상 60억 인구의 59억 9999만 9999명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번 리우 올림픽 펜싱 중계 당시 김정환 선수가 동메달을 땄을 때 제가 ‘1등과 최고에만 미친 대한민국과 우리 모두에게 외친다’라는 말을 한 적 있어요. 1등만 중요하게 여기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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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만큼이나 스포츠 캐스터들도 한 시즌 중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강한 체력이 뒷받침돼야한다. 정우영 역시 스케줄이 빡빡하더라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전 회사 있을 때 방송을 많이 하고, 일정이 빡빡하다보니 어느 날부터 가위에 눌리더라고요. 기력이 허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마라톤을 했었는데 근력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뛰어서 그런지 무릎이 고장 났어요. 그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전환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어요. 출장 갔을 때도 호텔 피트니스 클럽을 이용하거나 근처에서 1일 이용권을 끊고 운동을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한 시간 반은 꼭 해요. 체력 관리를 위해서 많은 운동을 하다 보니 몸과 관련돼서 안되는 게 없더라고요. 단기간에 몸무게도 많이 감량했고, 40년 동안 못하던 턱걸이도 하게 할 수 있게 됐죠.”

정우영은 중계를 하면서 웃지 못 할 해프닝들을 많이 만들기도 했다. 족발 메뉴 옆에 원산지(스페인)가 표기된 걸 보고 ‘스페인 족발’이라고 잘못 이해해 웃음을 자아냈었고, 경기 중계 도중 한만정 해설위원과 선수의 닮은꼴을 두고 티격태격했던 게 회자되기도 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정우영에게 중계방송 도중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배우 이연희가 중계석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연희는 지난 2013년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당시 시구를 했었고, MBC스포츠플러스 중계석에서 막간의 인터뷰를 나눈 적 있었다.

“지금은 LG 트윈스 감독님인 양상문 감독님과 그때 중계를 했었는데 원래 이연희 씨가 1회초 끝나고 중계석을 방문하기로 예정돼있었어요. 타이밍이 안 맞았는지 1회초가 끝났는데도 안 오셔서 준비했던 질문지를 어디에 던져 놨었죠. 그런데 1회말 끝나고 보니까 이연희 씨가 뒤에 와 있더라고요. 질문지를 다시 찾으려고 했는데 그게 중계 자료들 사이에 섞여서 안보여서 당황했고, 말을 굉장히 더듬었었는데 이게 이연희 씨 미모에 얼어서 더듬은 것처럼 비춰져서 와이프도 화가 많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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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의 캐스터 인생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생 경기’는 조성환(現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의 생애 첫 끝내기 안타가 터진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김연훈(現 KT 위즈 선수)이 끝내기 안타를 쳤던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맞대결이었다.

그는 두 경기 모두 지금 생각해도 전율 돋을 정도라며 자신에게도 굉장히 의미 있었던 중계였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한국의 우승으로 끝난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중계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했다. 당시 한국은 일본 야구의 심장부 도쿄돔에서 홈팀 일본과 준결승전을 치렀고, 9회초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냈었다.

“그때 중계는 너무 힘들었어요. 중계석을 관중석 한복판에 떡하니 마련해줘서 저희가 무슨 말만 해도 일본 관중들이 째려보고 눈치를 주더라고요. 이런 곳에서 중계방송하려고 중계권료도 적게 낸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나중에 꼭 되돌려줄 거예요. 그래도 경기 중계하는 도중에는 눈치 안보고 엄청 기뻐했어요. 오재원 선수가 배트플립을 했을 때의 희열감은 말로 할 수 없었죠. 대회 자체도 ‘오래 이길 필요 없다. 마지막에만 이기면 된다’는 안경현 해설위원님의 명언으로 마무리됐어요. 개인적으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 이후 최고의 명언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 SBS 중계진으로도 참여했던 정우영은 이번 리우 올림픽을 통해 2년 만에 브라질을 다시 찾았다. 이름이 똑같은 원우영 해설위원과 펜싱 중계를 맡아 환상의 호흡을 뽐내며, SBS의 펜싱 시청률 1위도 이끌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운동만 하다온 것 같아요. 한국 펜싱 선수들이 계속 초반에 탈락해서 오후 시간이 텅 비었어요. 원우영 위원이 현역 선수이기 때문에 몸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해서 저도 따라서 같이 운동했어요. 태릉인들의 런닝 방법도 많이 배워보고, 박상영 선수의 기적 같은 금메달도 중계하는 등 정말 많은 걸 얻었던 시간이었어요.”

정우영이 생각하는 스포츠의 매력은 뭘까.

“살아있는 거죠. 요즘과 같이 VOD 서비스나 IPTV가 발달된 시대에 생방송의 효용 가치가 남아있는 건 선거방송과 스포츠 중계방송 두 분야라고 생각해요. 선거방송은 선거가 있을 때 가끔 하는 거지만 스포츠는 매일 펼쳐지잖아요. 스포츠의 생동감을 시청자분들도 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정우영은 자신과 본인의 중계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고마움이 담긴 메시지를 남겼다.

“저는 운과 때가 좋아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중계를 좋아해주는 팬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욱 극적인 중계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캐스터의 능력을 평가할 때 샤우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미국이 사랑하는 캐스터라고 불리는 짐 렌츠의 중계방송은 샤우팅이 아닙니다. 저도 샤우팅보다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말들을 통해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캐스터가 되고 싶습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