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병원 최초로 IBM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을 도입한다. 정밀의료 구현 스타트를 끊었다. 우리나라 환자에 맞춤형 치료방법을 제시하기까지는 산적한 과제가 많다. 당장은 `마케팅` 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천대 길병원은 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IBM과 `왓슨 포 온콜리지` 솔루션 도입 조인식을 체결했다.
왓슨 포 온콜리지는 IBM 인공지능 기술인 코그너티브를 적용한 시스템이다. 방대한 분량 데이터를 분석해 의사가 암환자에게 적용할 치료 방법을 제시한다. IBM은 미국에 있는 인공지능(왓슨) 엔진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제공한다. 가천대 길병원은 이 솔루션을 활용해 환자에게 가장 최적화한 항암 치료 방법을 제시한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표된 종양학 논문은 약 4만4000건에 달한다. 매일 새로운 논문 122개가 발표된 셈이다. 의료지식을 의사가 모두 확인하기 어렵다. 왓슨 포 온콜리지는 300개 이상 의학 학술지, 200개 이상 의학 교과서를 포함해 15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의료정보를 학습했다. 의사가 암 환자 정보를 입력하면 여러 치료 방법을 제시한다.
로버트 메르켈 IBM 왓슨 헬스 종양학 및 유전학 글로벌 총괄 사장은 “2020년까지 의학정보, 문헌 내용은 40일마다 2배 늘어난다”며 “인간사고 능력을 초월한 의학지식을 왓슨이 자동으로 학습해 의사에게 최적 항암 치료요법을 제공 한다”고 말했다.
가천대길병원은 10월부터 실제 진료에 왓슨을 활용한다. 다학제 진료가 기본인 암 치료에 왓슨이 제시한 치료법을 함께 공유한다. 길병원 암 진료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향상시킨다.
이언 길병원 인공지능기반정밀의료추진단장은 “10월부터 인공지능 암진료 예약센터를 운영해 실질적인 진료환경에 적용할 계획”이라며 “암 진료를 넘어 당뇨, 난치성 신경질환 등 영역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의학은 데이터 기반 맞춤형 치료가 핵심이다. 의사가 학습하기 어려운 방대한 양의 의학지식을 기계가 학습하고, 치료를 보조한다. 운전자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도록 돕는 `내비게이션`과 같다. 길병원이 국내 병원으로 첫 출발을 알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왓슨은 현재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 IBM은 내년까지 한국어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왓슨이 한국어 기반 의학자료를 습득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표준화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병원마다, 의사마다 쓰는 용어가 통일되지 않다. 다양한 용어로 기록된 진료기록은 표준화가 어렵다. 왓슨이 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치료방법, 제도가 다른 것도 문제다. 미국에서 개발한 왓슨은 치료방법도 우리나라와 다르다. 가령 우리나라는 위암 치료를 하는데 있어 수술과 항암제 치료가 병행된다. 미국은 방사선 치료까지 기본으로 추가된다. 각종 보험제도, 의료법 등도 달라 왓슨을 우리나라 환경에 적응시키는 것도 과제다. 당장 치료환경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김치원 서울와이즈요양병원장은 “병원 내 의료 표준화 작업이 더디고 한국어 지원까지 안되는 상황에서 당장 한국인에 맞는 치료법을 제시하기 어렵다”며 “국내 병원 첫 도입이라는 타이틀 외에 당장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길병원이 기대하는 것은 의료 서비스 개선 외에 왓슨 도입을 내세워 정부 정밀의료, 인공지능 사업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실제 정부는 암 치료를 위한 정밀의료 구현을 국가 프로젝트로 선정, 내년부터 엄청난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도 “초기 2년은 실제 환경에 적용해 여러 테스트를 하고, 다음 2년에 EMR(전자의무기록)과 연동해 한국인을 위한 치료법을 제시할 것”이라며 “정부주도 정밀의학, 인공지능 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