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세금 들인 국산 DNA 분석 기술, 공공기관 도입률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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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원을 들여 개발한 국산 DNA 분석 핵심 기술을 공공기관이 외면하고 있다. 사업을 주관한 대검찰청조차 도입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외산대체` `국산 키트 수출`이라는 당초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대검찰청은 2012년 `범죄자 DNA DB 및 DNA 감식기술 국산화 및 차세대 선진기술 기반 구축` 사업을 추진했다. DNA 감식과 데이터베이스(DB) 구축에 활용되는 국산 기술 확보가 목표다. 3년 동안 20억원이 투입됐다. 사업은 서울대와 연세대 법의학과 교수, 바이오퀘스트 등 전문업체가 참여했다. 2014년에 상염색체 STR(염기서열반복구간) 분석용 키트 국산화에 성공했다. `K-플렉스 15` `K-플렉스 23`는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DNA 요소가 각각 15개, 23개다. 시중에 공급되는 외산 제품 대부분이 각각 13개, 20개인 것과 비교할 때 성능을 향상시켰다. 무정제 DNA 증폭 기술을 접목, 채취한 시료를 바로 증폭시킬 수 있다.

2014년 개발이 완료됐지만 발주처인 대검찰청은 물론 국방부, 통일부, 질병관리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연간 수만건에 이르는 DNA 분석 기관들도 국산 키트를 외면했다. 외산과 비교해 동등성도 입증했지만 여전히 사업에 참여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김종열 바이오퀘스트 대표는 “국산 키트는 극소량의 증거물이나 부패 등으로 분해된 시료에서도 검출 감도 및 검출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다”면서 “2014~2015년 공공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두 차례 실증 사업까지 진행했지만 여전히 제안서에는 외산 제품 스펙을 명시, 우리는 참여할 기회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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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전자 분석 업체 연구원이 유전자 칩으로 분석하고 있다(자료: 전자신문 DB)

국내 공공 DNA 분석 키트 시장은 약 100억원으로 추산된다. 범죄자 DNA 분석과 DB 구축(대검찰청, 국과수), 전사자 유해 발굴(국방부), 이산가족 찾기(통일부) 등 주로 개인 신원 확인 분야에 쓰인다. 연간 분석 건수만 따지면 30만건에 육박한다.

공공·민간을 포함해 개인 식별 DNA 분석 분야에는 아이덴티파일러, 파워플렉스 등 외산이 100% 장악했다.

공공기관이 국산 키트 도입을 주저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외산 제품만 도입하던 구매 관행을 깨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K-플렉스는 사실상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키트다. 대검찰청, 국과수 등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성격상 신뢰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의 도입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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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외산제품을 명시한 국과수 DNA 분석 키트 도입 제안서

그럼에도 외산과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건 문제라고 업계는 지적한다. 상당수 기관들이 DNA 분석 키트 도입 제안요청서에 특정 외산 제품 스펙을 명시, 국산업체 참여가 원천 차단된다.

이숭덕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는 “전사자 유해 발굴, 미아 찾기, 범죄자 DNA DB 구축 등은 매년 수요가 발생하는 전향 사업”이라면서 “공공기관이 국산 제품을 배제한다면 국산 키트 시장의 성장은 물론 유전자 분석 역량 확보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종열 대표는 “외산 제품명을 제안서에 명시하기보다 최소 유전자위 명시 등으로 공정한 입찰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국산 제품이 사실상 전혀 없다가 새롭게 개발되다 보니 검증 작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검증만 됐다면 당연히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