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발생한 고속버스 5중 추돌사고 이후 `자동긴급제동장치(AEB)` 장착 의무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당 버스에 AEB가 장착됐다면 이 같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국회에 묶여 있는 AEB 의무 장착 법안은 수개월째 심의 일정조차 잡히지 못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충돌 등 사고 위험 가능성이 커지면 자동차 스스로 제동장치를 작동해 사고를 예방하는 기술인 AEB 의무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안은 45인승 버스와 총중량 20톤 이상 대형 화물차의 경우 2019년까지 AEB 장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지난해 인천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가 발생한 뒤 AEB 의무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긴급히 법안이 마련됐다. 하지만 관련 시행규칙은 입법예고까지 마쳤지만 규제개혁위원회로 넘어간 이후 수개월째 심의 일정조차 잡히지 못하고 있다.
AEB는 자동차에 부착된 전방 센서, 레이더, 카메라 등을 이용해 충돌 사고가 예상되면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필요 시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는 장치다.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에 따르면 AEB를 기본으로 갖출 때 후방 추돌 사고율이 40% 감소하고 연간 교통사고 발생률은 20% 줄어든다. 유로NCAP와 오스트랄라시아(호주·뉴질랜드·서남 태평양제도) NCAP도 공동 연구에서 AEB 시스템이 전방 추돌 사고를 38% 줄여 준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 3월 교통부 산하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등이 20여개 자동차 업체와 협의해 오는 2022년까지 모든 신차에 AEB를 기본 장착하기로 했다.
국내 AEB 장착 의무화는 아직 논의 초기 단계다. 이 때문에 국산차 업계의 대응도 늦어지고 있다. 현재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나머지 3개사의 AEB 탑재 차량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지엠은 임팔라·말리부 등 2종, 르노삼성차는 SM6 1종에 AEB를 장착했다. 쌍용차는 적용 차량이 한 대도 없다. 현대·기아차는 2013년 제네시스에 AEB를 처음 장착한 이후 지난해 신형 아반떼까지 적용 차종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물은 결국 규제에 맞추기 위해 발전하기 마련인데 AEB처럼 안전과 직결되는 장치는 의무 장착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면서 “다만 AEB 장착이 의무화되면 차 값 상승에 따른 소비자 불편이 예상되며, 완성차 업계의 적절한 가격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종은 자동차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