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출시장을 중심으로 위기에 빠진 국내 자동차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고용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유연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과거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한국과 같은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면서 자동차 산업이 부활한 것을 참조하자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주최로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스페인·이탈리아 자동차산업의 노동부문 개혁사례 세미나`에서 이 같이 밝혔다.
스페인 정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마이너스 성장과 40%에 육박한 청년실업률을 해결하기 위해 2010년, 2012년 2회에 걸쳐 노동개혁을 실시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해고수당축소로 정규직 고용촉진 △비정규직 고용억제 △배주유연성 △기업중심 단체협약제도 정착 △고용보호제도 완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이다. 해고제도의 경우 부당해고 보상금을 근속 1년당 45일에서 33일로 축소하고, 경영상 해고 사유를 확대했다.
박 교수는 “기업이 지속적인 수입 감소로 생존이나 고용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는 경영상 이유로 해고가 가능하고, 부당해고 시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보상액은 1년당 45일, 최대 42개월의 임금에서 1년당 33일, 최대 24개월치로 감액했다”며 “50명 미만 근로자를 고용하는 소기업에게는 1년의 수습기간을 두고 무기계약으로 고용가능케 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가 주된 방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탈리아 노동개혁도 해고제도 유연화에 힘을 싣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는 1년당 1개월 임금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지급하면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사용자가 해고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해고보상금에 대해 면세혜택도 부여한다.
박 교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노동개혁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스페인은 2014년 1.4%, 2015년 3.2%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유럽연합(EU) 29개국 평균 성장세에 비해 높은 것이다. 고용 측면에서도 일자리가 늘어났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0.6%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며 4년 만에 성장세로 전환했다. 향후 10년 간 국내총생산(GDP)이 1.2%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동시장 역시 10년 뒤 27만명 고용창출 효과도 예상했다.
박 교수는 “우리 노동시장 역시 유연안정성에 기반한 전방위적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협회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생산, 수출 대수는 각각 2011년 466만대, 2012년 317만대 이후 감소 추세다. 올해 상반기 생산량은 219만5843대로 지난해 동기보다 5.4% 감소했다. 수출은 133만8590대로 13.3% 축소됐다. 국내 생산 감소로 완성차 고용인원은 2010년 9만1277명에서 2014년 8만5436명으로 줄었다.
김용근 KAMA 회장은 “주요 자동차 선진국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했지만 우리만이 대립적 노사관계를 존속하고 있다”며 “노사관계 부담이 국내 생산물량이 줄고 해외 생산물량이 늘어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했다.
KAMA는 미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선진국 자동차회사들의 노사관계를 토대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글로벌 스탠다드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회사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해당 국가 및 지역의 고용유지와 미래세대를 위한 고용창출과 직결돼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사 협상이 `고용`과 `임금` 간 합리적인 빅딜 협상구조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총액임금 부담이 선진국 경쟁사와 유사한 수준이 될 때까지 최소 향후 3∼4년간 총액임금 인상을 최소 수준으로 자제해야 하며 신차개발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소요되는 자동차산업 특성을 감안해 `3∼4년 단위의 중장기형 임금협약`에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생산성과 무관하게 근무연수에 따라 급여가 오르는 호봉제를 완화하고, 직무형태, 숙련도 등에 대한 반영을 확대하는 등 성과형 임금체계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종은 자동차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