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립박수 시간을 반으로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 ‘아가씨’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덕분에 칸을 방문한 하정우의 첫 마디였다. 그는 칸 현지에서도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해 기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15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 칸 제이더블유 매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아가씨’ 한국매체 인터뷰에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배우 하정우, 김민희, 조진웅, 김태리 등이 참석했다.
하정우는 바로 전날인 14일 ‘아가씨’ 공식 상영회와 더불어 레드카펫에 참여했다. 그는 “‘아가씨’ 공식 상영회가 끝나고 계속 박수를 치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봤어요. 늘 보던 사람이 아니라 하이파이브나 포옹을 할 수도 없고 되게 어색했죠.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출연한 작품을 나만 재미있는 게 아닐까, 한국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가씨’에 대해서 “박찬욱 감독님의 전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을 것이다. 굉장히 많이 순화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달라졌다”며 “히데코(김민희 분)와 숙희(김태리 분)의 베드신이 친근하게 느껴져 놀라웠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감독님이 전에는 인물들을 담을 때 한 발짝 떨어져있었다면, 이번에는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하정우는 극 중 재산을 노리고 아가씨(김민희 분)에게 접근하는 사기꾼 백작 역을 맡았다. 그는 진짜보다 더 진짜 백작 같은 모습으로 아가씨와 하녀(김태리 분), 후견인(조진웅 분)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인물 간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는 자신이 맡았던 백작 캐릭터 준비에 있어서는 잘 짜여 진 시나리오로 공을 돌렸다.
하정우는 “이미 시나리오에 캐릭터 디자인이 잘 돼 있었어요. 더 과감하게 표현하려 했죠. 백작이 아닌 사기꾼이라는 1차원적인 표현보다는 어떨 때는 어설퍼 보이는 게 연민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감독님이 저를 잘 관찰해서 캐릭터를 잡아줬기에, 백작 캐릭터가 불편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주로 남성성이 강한 작품에 출연했던 하정우는 여성성이 강한 ‘아가씨’를 선택했다. 그의 이러한 선택에는 배우로서 ‘신념’이 깔려 있었다.
하정우는 “대중들이 요구하는 캐릭터와 작품만 할 수는 없잖아요. ‘추격자’ 때도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순수하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주변에서 다 만류하고 반대했었죠. 2006년도에 처음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 내 신념대로 가야겠다고 다짐했죠. 그것이 고집이 아니라 열려 있는 신념과 생각을 가진 배우로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야겠다는 것이었죠.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로 작품을 선택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아가씨’도 그런 느낌이 들어서 선택했었죠. 하정우라는 인물이 상업이 아닌 예술영화에 나와 주길 바라는 관객들도 있듯이, 균형을 맞춰가면서 성장하고 좋은 작품과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아가씨’를 통해 뭔가 1센티미터라도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설명했다.
분명한 것은 ‘아가씨’를 통한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이 배우 하정우는 물론이며, 감독 하정우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칸국제영화제에 경쟁부문에 세 번이나 진출한 박 감독의 작품에는 그간에 얻는 그의 경험들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그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분),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오는 6월1일 개봉 예정.
칸(프랑스)=조정원 기자 jwc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