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방송` 전쟁에 돌입했다.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콘텐츠 기반의 상품 판매 방송과 TV홈쇼핑, T커머스가 `영상`이라는 공통분모로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초기 MCN 콘텐츠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광고였다. 온라인이나 모바일에서 간편하게 시청할 수 있는 콘텐츠를 유통하면서 클릭 광고, 노출 광고 등을 실었다. 콘텐츠 구독자에게 기간에 따라 일정 요금을 받거나 주문형비디오(VoD)로 개별 과금하는 모델도 나타났다.
최근에는 MCN 영상 콘텐츠에 커머스를 융합하는 추세다. 페이스북, 유튜브에서 확보한 구독자나 팬을 대상으로 손쉽게 상품 판매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어서다. 해당 콘텐츠가 인기를 얻으면 신규 시청자를 유치할 수 있는 바이럴(입소문) 마케팅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전통의 영상 유통 강자 TV홈쇼핑과 T커머스, MCN 커머스의 영상 전쟁에 막이 올랐다.
◇TV홈쇼핑, MCN에서 돌파구 찾는다
TV홈쇼핑 업계는 성장 정체기를 맞았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N스크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언제 어디서나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면서 실시간TV 시청자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홈쇼핑은 T커머스가 등장하면서 TV 플랫폼에서 우위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잠재 고객인 시청자는 언제 어디서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모바일쇼핑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로 11개 TV홈쇼핑 방송 상품을 모바일 앱에서 유통하는 버즈니 `홈쇼핑모아`의 지난 3월 월 순방문자 수(MAU)는 100만명에 육박했다. 홈쇼핑 특성상 TV를 보면서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이례다. TV홈쇼핑 고객이 일방으로 정보를 받는 입장에서 상품을 `골라 보는` 구매 행태를 나타내기 시작한 셈이다.
남상협 버즈니 대표는 “홈쇼핑은 특정 채널 시청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모바일·인터넷으로 짧은 시간 동안 쇼핑을 즐기는 젊은 연령층을 끌어들이기 어렵다”면서 “모바일 쇼핑 대중화에 따라 스마트폰으로 홈쇼핑을 즐기는 고객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홈쇼핑 업계는 MCN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고정형 TV 중심 플랫폼에서 벗어나 사업 채널을 다각화하는 한편 40대 이상 연령층으로 구성된 고객층을 10~30대 젊은 층을 신규 고객으로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CJ오쇼핑은 지난해 온라인 사이트에서 1개 상품을 1분 안에 소개하는 `1분 홈쇼핑`을 선보였다. 모바일 플랫폼 사용자의 특성을 감안, 이동 중에서 부담 없이 볼 수 있도록 짧은 분량으로 제작했다. 제작비용은 내부 영상 제작 인프라를 활용해 대폭 줄였다. 상품기획자(MD)가 추천하는 다양한 상품 소개는 물론 협력사가 제작한 콘텐츠도 1분 홈쇼핑 마케팅에 활용한다.
방송 초기에는 TV홈쇼핑에 진입하기 어려운 제품이나 독특한 상품을 주로 소개했다. 현재는 일반 기획 상품으로 방송 상품군을 확대했다. 지난해 9월부터 이달까지 소개한 상품은 70여 가지다. 누적 조회 수는 500만건, 팔로어 수는 1만명에 이른다.
CJ오쇼핑 관계자는 “고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짧은 동영상을 많이 본다는 것에 착안해 제작한 콘텐츠”라면서 “특별히 정해진 형식 없이 상품에 따라 시연, 상황극, 1인 개그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홈쇼핑은 인기 방송진행자(BJ)를 활용, MCN 상품 방송을 실험하고 있다. 지난달 먹는 방송(먹방)으로 인기를 얻은 김형욱, 양수빈을 섭외해 페이스북과 아프리카TV에서 실시간 먹방 대결을 펼쳤다. 해당 콘텐츠는 25만명에 이르는 동시 접속자 수를 기록하는 등 관심을 끌었다. 현대홈쇼핑은 해당 콘텐츠에서 식품을 판매, 90분 동안 매출 10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 11일에는 인기 개그맨 유상무의 개인 페이스북과 TV홈쇼핑에서 상품 판매 방송을 동시 생중계했다. 유상무가 보유한 팔로어 60만명을 대상으로 홍보 영상을 송출, 매출은 물론 젊은 고객층까지 잡겠다는 전략이다.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TV홈쇼핑과 비교하면 매출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객이 SNS에서 방송을 보고 상품을 구매한 것은 청신호”라면서 “T커머스 채널과 SNS에 MCN 형태의 방송 콘텐츠를 적용하는 등 시도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GS홈쇼핑은 MCN을 모바일 경쟁력 강화에 활용하고 있다. 일주일에 사흘 동안 모바일 앱에서 MCN 상품 방송 `날방`을 진행한다. BJ가 판매 상품을 직접 사용하거나 시연하면서 상품 정보를 전달하는 형태다.
날방 시청자는 방송시간 동안 실시간 메신저 `날톡`으로 BJ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홈쇼핑 모델을 양방향 미디어로 진화시킨 것이다. BJ는 고객 의견을 읽어 주거나 요청 사항을 수행한다. 시청자가 직접 방송에 참여하도록 유도, 상품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방송 때마다 1000개 이상의 날톡이 등록되고 있다. 하루 최고 조회 수는 1만건이 넘는다. GS홈쇼핑은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기 쇼호스트와 아프리카TV의 인기 BJ를 내세울 계획이다.
◇MCN에 꽂힌 온라인 유통가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종합몰 등 온라인 유통가도 MCN 기반의 비디오 커머스 시장 선점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큰 비용 부담 없이 자체 온라인 사이트와 모바일 앱, SNS,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MCN 콘텐츠 송출 플랫폼으로 활용하며 수익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쇼핑 사업자 가운데 인터파크가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아프리카TV의 인기 BJ 섭외, MCN 방송 상품 영역 지속 확대 등 시장 선점에 팔을 걷어붙였다.
인터파크는 지난 3월 모바일 라이브 방송 업체 마립과 손잡고 오픈마켓 최초로 실시간 쇼핑 생방송 `라이브 온 쇼핑`을 선보였다. 전문 쇼핑호스트가 고객에게 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생방송 시간 동안 실시간 채팅창으로 배송, 사후관리(AS) 등 고객 문의에 즉석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지난달 기준으로 `라이브 온 쇼핑` 하루 평균 시청자 수는 1만2000여명이었다. 전월보다 21%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의 상품 주문 수량은 13.5% 늘었다. 오픈마켓 특성상 2차원 화면으로만 봐야 하던 상품군을 방송에서 자세히 설명, 신뢰성을 강화한 덕이다.
인터파크는 `라이브 온 쇼핑` 수수료를 기존의 홈쇼핑, T커머스보다 낮게 책정했다. 상품군 확대를 위해 판매자 진입 장벽을 낮춘 것이다. 최근에는 키즈, 뷰티, 리빙, 여행 등으로 방송 대상 상품군을 확대했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MCN 방송은 일반 홈쇼핑과 달리 고객이 모든 구매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 “중소기업의 새로운 홍보 채널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셜커머스 티몬도 MCN 방송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SNS 페이스북에서 상품 판매 방송을 시작했다. 주요 상품을 5분가량 소개한다. 티몬 사이트와 모바일 앱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인기 BJ나 쇼호스트가 아닌 티몬 직원이 등장, 고객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MCN 방송의 성과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티몬 페이스북 방송은 매회 누적조회 수 2만~5만건, 댓글 1000여개를 기록한다. 온라인쇼핑 상품 조회 수는 하루 평균 1만건을 넘기기 어렵다. 한 중소기업은 티몬 영상에서 TV 제품을 소개해 20분 만에 매출 500만원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송철욱 티몬 커뮤니케이션실장은 “지난달부터 페이스북 라이브로 MCN 상품 판매 방송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면서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 의견을 실시간으로 청취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스낵컬처, 비디오 커머스 효시
스낵컬처는 10분 안팎의 시간 동안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콘텐츠를 즐기는 문화 트렌드다. 시간이나 장소 제약 없이 빠른 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스낵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휴식 중에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뜻한다. MCN 방송은 물론 웹툰, 웹 드라마 등이 스낵컬처 대표 콘텐츠다.
KT경제경영연구소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전국 20대 남녀 9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7.8%가 대중교통이나 차량 이용 때 스마트폰(모바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동하는 동안 가볍게 영상, 텍스트 등을 즐기기 위함이다. 평균 이용시간은 40분으로 나타났다.
휴식시간에 모바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중은 16.8%였다.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50.2분으로, 이동 중보다 10분가량 긴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조사 대상의 26.5%는 잠들기 직전에 스마트폰 몰입도가 높다고 응답했다. 평균 사용시간은 36.3분으로 집계됐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 918명 가운데 46%는 영상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다고 답했다.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영상 콘텐츠 길이는 43.1초로 나타났다. 54% 응답자가 영상 시작 시점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즉시 다른 콘텐츠로 이동하는 셈이다.
MCN 영상 콘텐츠는 시청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방송 아이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SNS, 10분 안팎의 짧은 분량 등을 앞세워 사용자 `터치`를 유발한다. BJ 인지도에 따라 수십만에 이르는 시청자가 같은 콘텐츠를 감상한다. 분량이 짧기 때문에 일반 제작사보다 빠르게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많은 편 수를 단시간에 배포할 수 있다. 온·오프라인 유통업계가 MCN 콘텐츠를 새로운 판매 채널로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윤희석 유통/프랜차이즈 전문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