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과 협력사 간 갈등 등 예기치 못했던 사건·사고가 늘어나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위기 관리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제품 수명 주기가 짧았던 전자산업 분야에서 주로 채택되어 왔던 위기 대응 관련 국제 인증(ISO 22301, 비즈니스 연속성 경영 시스템)을 자동차 업계도 획득하기 위해 추진 중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2~3년 내에 해외 공장까지 ISO 22301을 받기 위한 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증을 받는 협력업체들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ISO 22301은 기업이 재해, 재난, 테러 등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업무중단 위험이 발생할 경우 그로 인한 비즈니스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2012년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정한 국제 표준규격이다. 최근 들어 화재·지진과 같은 대형 재해가 급증하면서 ISO 표준까지 나오게 됐다. 독일 한 보험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전 세계에서 연 평균 13건 정도 발생했던 대형 재해가 2000년대 들어서는 25건가량으로 늘어났다.
일본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위기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상황이다. 동일본 지진을 경험한 토요타가 위기관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이번 구마모토 지진에서는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국내에서는 완성차와 부품 업체의 해외 공장이 늘어난 데다 최근 협력사 갈등으로 현대차가 일시적으로 라인 중단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필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사고나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준비된 복구 전략과 매뉴얼에 따라 핵심 업무를 빠르게 복구하기 위해서다.
자동차 부품 업계에서는 지난해 LG전자가 처음으로 영국표준협회(BSI)로부터 ISO 22301을 획득했다. LG전자는 이어 지난달에 베트남에 있는 IVI(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부품) 생산라인까지 인증을 받았다.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해 협력업체들도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올해부터 시작해 2018년에는 해외 공장까지 확산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매뉴얼을 만들고 직원 교육을 진행 중이다. 자동차 업계 관심이 높아지자 한국표준협회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을 대상으로 관련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분야는 대체 부품이 많지 않아 전자산업과 달리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재해와 사건사고가 많아지면서 자동차 업계도 복구 매뉴얼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문보경 자동차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