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똑똑해진 로봇이 금융시장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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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온라인 주식시장이 처음 열릴 때만 해도 온라인 주식거래는 1%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90% 이상이 모바일과 온라인으로 거래합니다. 금융 변화는 한순간에 몰려옵니다.” 한 증권사 임원이 로보어드바이저 시대를 예고하면서 한 말이다.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의 대국 이후 로보어드바이저에 금융권의 관심이 쏠렸다. 지난 21일에는 금융위원회가 본인가를 앞둔 인터넷전문은행에 로보어드바이저 비대면 투자자문 서비스를 허용할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로보어드바이저 열풍도 거세다. 증권사와 은행이 저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새로운 상품군으로 제시하면서 로보어드바이저 시대로의 본격 진입을 알렸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투자 판단을 결정하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예고한 셈이다.

◇금융권 `알파고` 로보어드바이저 납시오

올해 들어 국내 금융권에는 로보어드바이저 상품 출시가 잇따랐다. NH투자증권이 `QV 로보 어카운트`를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전문회사 쿼터백투자자문이 자문형 상품 `쿼터백 알파`와 `쿼터백 베타`를 내놨다. 이어서 신한금융투자, KDB대우증권,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이 핀테크 업체와 손잡고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내놨거나 준비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출범할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와 K뱅크 역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상품 출시가 올해 들어와 본격화된 것은 핀테크 열풍과 함께 소액 투자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로 주목받기 때문이다. 1% 저금리 기조에서 안정된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기존의 PB 서비스는 문턱이 너무 높다.

초반 수익률은 일반 펀드 수익률을 앞섰다. KB국민은행이 올해 초 쿼터백투자자문과 손잡고 내놓은 자문형 신탁상품 `쿼터백 R-1`은 2개월 만에 2% 후반대의 수익을 올렸다. 일반 펀드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뒷걸음쳤고, 코스피지수도 2월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양신형 쿼터백투자자문 대표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이벤트 중심으로 편성돼 약세장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있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어서 고무된다”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대체로 시장 지수보다 2~3% 안팎 웃도는 수익률을 올리는 PB를 상위 30%로 꼽는다”면서 “로보어드바이저의 초반 수익률은 상위 PB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아직은 걸음마…개선 속도 빨라질 듯

로보어드바이저에 관심이 커졌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로보어드바이저는 과거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해 예측 가능한 박스권 장세에서는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금융 위기 등 시장이 급변하는 동안에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도 있다. 또 실제 운용 기간이 짧아서 모델 안정성에 대한 검증이 미흡하다. 제한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한 고객의 불만 증대 가능성 등도 고려할 문제로 꼽힌다.

손위창 현대증권 연구원은 “운용 기간이 짧아서 검증이 미흡하고 업체마다 금융시장 환경에 대한 위험 인식 수준, 자산별 기대 수익률 산출, 자산 배분 엔진 등이 달라서 똑같은 조건을 넣어도 자산 배분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면서 “결국 성과에 대한 충분한 기록이 쌓인 뒤에야 업체별 알고리즘의 성패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핀테크 업체가 내놓은 로보어드바이저가 기술이 뒤지지 않고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정범 대우증권 상품개발팀장은 “상품 개발 차원에서 국내외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비교했다”면서 “국내 업체의 기술이 결코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쿼터백이나 디셈버가 내놓은 기술은 단순히 과거 데이터 입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예측 알고리즘을 내장했다”면서 “이는 미국 로보어드바이저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김 팀장은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빠르게 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권 일자리 감축 우려 높아

금융권 관심만큼 금융권 직장인 고심도 커졌다. 로봇이 안정된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우려다. 실제 일부지만 이러한 움직임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은 최근 개인고객 컨설팅 부서를 줄이면서 550명 감원 계획을 밝혔다. 해당 컨설팅 부서는 자산 25만파운드(약 4억2300만원) 이하 고객을 대상으로 투자와 보험가입 등 자문에 응해 왔다. 실적은 8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부진했다. 빈자리는 로보어드바이저가 대체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에 검증이 끝나면 새로운 변화가 올 전망이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로보어드바이저가 확산되면 저렴한 비용으로 서민도 자산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금융사도 수익성 악화를 벗어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로보어드저가 널리 퍼지면 그동안 소규모 펀드를 운용해 온 인력과 함께 판매와 지원 인력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금융권과 정부 차원에서도 이같은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용어설명: `로보어드바이저란 `로봇`과 `어드바이저(조언자)`의 합성어다.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상의 자산관리 서비스다. 사람 대신 컴퓨터 로봇이 투자자 성향과 시장 상황을 분석해 투자자에게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짜고 자산을 운용한다. 투자자가 PC나 모바일로 로보어드바이저 프로그램에 투자성향, 투자금액, 투자목표 등을 입력하면 투자자 성향에 맞춰 적합한 금융 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경민 코스닥 전문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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