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는 대한민국의 조직문화 특징이자 강점으로 꼽힌다. 이런 조직문화가 항상 강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 도전과 혁신을 기피하는 보수 조직문화를 잉태하는 부정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왜 잘나가던 기업이 현금을 쌓아둔 채 몸을 사리고 있고, 왜 젊은이들은 안정된 직장만을 찾아 나서고 있는가. 우리가 21세기 글로벌 혁명을 위해 극복해야 할 큰 걸림돌은 누구보다도 빠른 학습 능력을 자랑하는 우등생 함정이다. 재빨리 배워 내는 스피드 문화는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소아성(小我性) 공동체주의와 어우러져 `일치단결해서 선발주자를 추격하는` 역량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우등생이 쉽게 빠지는 함정을 알고 있다. 똑똑하지만 주변 상황에 맞추지 못하는 우등생을 `헛똑똑이`라고 부르고, 그 실패를 `제 꾀에 빠진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구조전환기를 맞아 경계해야 할 것들이 바로 이러한 성공 함정이다.
누구보다 빨리 배우는 능력을 갖춘 `똑똑한` 우등생이 빠지기 쉬운 심각한 약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등생들이 어느 순간 위험을 회피하는 관료 성격의 보수주의 의사결정자가 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 가운데 `뜨거운 난로 효과(the hot stove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우리는 대체로 난로 위 주전자나 냄비에 무심코 손을 댔다가 `앗! 뜨거!`라고 경험한 적이 있다. 바로 그와 같은 위험 경험이 앞으로의 의사결정 성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똑같은 위험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우등생들은 훨씬 민감하게 반응해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비해 훨씬 더 위험을 기피하는 성향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우등생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뜨거운` 경험을 한 후 재빨리 다음 의사결정에 반영해 위험한 일은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으려는 보수 성향을 띠기 쉬워지게 된다.
이 이론을 통해 보면 왜 우리 대기업이 벤처·창업 기업에 과감한 투자를 기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우등생 그룹`이다. 대체로 국내외에서 몇 건의 투자 실패를 한 경험이 있다. 물론 인수합병(M&A) 등의 투자는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대기업이 초기 투자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들은 벤처 투자를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한결같이 “해봤는데 잘 안돼서 여러 임원이 문책 당했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위험도가 높은 도전성 투자 제안은 아예 검토조차 못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기업은 어떻게 높은 위험감수 성향과 도전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 기업인 딥마인드에 1억달러를 과감히 투자한 구글이 오히려 일반 사례다. 그들도 똑같이 `뜨거운 난로 효과` 경험을 했지만 실패에도 계속해서 위험 학습의 경험을 늘려가며 노하우를 쌓고, 그 위에서 자신의 위험감수(risk-taking) 성향을 높여 나갔다. 반면에 우리 기업은 한두 번의 실패 경험 이후에 `위험한` 학습 경험을 아예 멈추어 버렸다. 즉 `앗! 뜨거워`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기업은 위험한 경험을 학습하면서 자신의 위험감수 성향이나 도전정신을 키워 나간다. 이때 위험 경험과 위험감수 성향 간 관계는 이론에서 `U`자 모양을 보인다는 것이 정설이다. 처음에는 위험 경험이 도전정신을 위축시키지만 점차 경험이 쌓이면서 위험감수 성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은 급속한 기술융합 시대에 필요한 도전정신을 제고하기 위해 실패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며 위험 경험을 계속 늘려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직문화로 바꿔 나가는 일이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도전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데에는 개인주의 문화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은 관점과 의견이 서로 다른 개인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고, 개인 구성원은 이러한 참여에 만족하지 못하면 과감하게 회사에서 나와 창업을 시도한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관점과 주장을 적극 반영하는 기업일수록 `뜨거운 난로 효과`를 줄일 수 있다.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활용하려는 조직 개방성은 우등생 함정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 요인이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성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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