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러시아 등 4개국 산유량 동결 합의를 지지하자 국제유가가 치솟았다. 이란은 경제 제재 이전 수준으로 산유량을 회복하기 전에는 동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동결로 급선회했다.
17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3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1.62달러(5.58%) 오른 배럴당 30.66달러로 거래를 마쳐 7거래일 만에 30달러선을 회복했다.
런던 ICE 선물시장 브렌트유 4월 인도분도 전일 대비 2.32달러(7.21%) 상승한 배럴당 34.5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열린 베네수엘라와 이란, 이라크간 회동에서 이란 정부가 산유량 동결 합의에 지지 입장을 밝힌 것이 기폭제가 됐다. 전날 석유 수출국 1·2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그리고 카타르와 베네수엘라가 지난 1월 수준으로 산유량을 동결하는 데 합의했다. 합의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선 유가 향방에 열쇠를 쥐고 있는 이란의 지지가 필요했다.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17일 테헤란에서 이라크, 카타르, 베네수엘라 석유장관과 4자간 회동을 가진 뒤 “유가 인상을 위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국 모든 결정과 협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란이 동결 조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란은 현재 일일 산유량 290만배럴을 2012년 경제 제재 이전인 400만배럴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목표를 세웠다. 수출량도 하루 130만배럴에서 상반기 내 200만배럴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번 이란 입장 표명이 산유량 연쇄 동결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잔가네 장관은 동결 참여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경제 제재로 원유 생산을 불가피하게 축소한 상황에서 사우디, 러시아 등 산유국이 생산량을 늘려 발생한 공급과잉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달갑게 여길리 없다. 이러한 이란 상황을 고려해 ‘우대 제안’이 주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유국간 이번 동결 합의는 사실상 파급력은 크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OPEC 회원국은 지난달 일평균 원유 생산량을 28만배럴 늘렸다. 생산량은 역대 최고치인 하루 3260만배럴에 달한다. 러시아도 소련 붕괴 이후 최대치를 뽑아내고 있어 1월 수준 동결로는 공급과잉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날 15년 만에 석유수출국기구(OPEC)회원국(사우디아라비아)과 비회원국(러시아) 간 생산량 제한 협의가 이뤄지는 등 유가 회복을 위한 산유국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또 원유 공급과잉 단초를 제공한 미국 생산·재고량도 감소 추세다. 전미석유협회(API)는 지난주 미 원유 재고가 전주보다 330만배럴 줄었다고 발표했다. 앞서 블룸버그는 지난주 미 원유 재고가 전주보다 300만배럴가량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재고 증가 예상과 달리 보유량이 줄어들면서 국제유가 추가 상승을 이끌었다. 17일 미국 전자거래에서 WTI는 2.5% 추가 상승한 배럴당 31.4달러선에서 거래 됐다. 2분기 미국 정유사가 유지보수를 끝내고 6~8월 드라이빙시즌에 대비해 가동률을 높이면 가격 악재 중 하나인 재고 증가 부담이 완화된다. 산유량 동결 협상 성과가 크지 않아도 향후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동결, 감산 협의가 계속될 예정이어서 전반적 유가 상승 기조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유국 동결 합의는 선언적 성격이 짙어 당장 유가 회복을 견인하기는 힘들고, 유가 하락 시 이런 발언으로 유가를 올릴 것”이라면서도 “그동안 초저유가를 용인한 사우디가 입장을 전환해 회복을 주도하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