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스마트그리드 원격검침인프라(AMI) 사업이 2년째 표류하면서 전력선통신(PLC) 칩 생산 중소업체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오는 2020년까지 1조7000억원을 투입해 2194만 가구에 AMI를 구축키로 한 계획이 헛돌고 있다. 업체들은 스마트그리드 AMI에서 최소 연 40만개 칩수요가 나올 것으로 보고 개발·생산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다른 공공사업을 기웃거려야하는 상황에 몰렸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PLC칩 개발·생산업체 아이엔씨테크놀러지·씨앤유글로벌·인스코비는 지난해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 교체 사업에 약 5만개 칩을 공급했다.
도로공사는 지난해부터 전국 주요도로 가로등에 한국형 PLC 기반 LED 교체 사업을 벌였다. 한전 AMI 보급사업 중단 이후 근 1년 만에 PLC 칩 수요가 생긴 것이다.
한전 계획대로 지난해 200만 가구에 AMI를 구축했다면 칩 40만개 가량이 들어갔지만, 실제 공급은 엉뚱한 곳에서 이뤄졌다. 그것도 당초 예측 물량의 13%에 불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지중(地中) 환경에서 한국형 PLC 성능 저하 문제가 불거지자 대책 마련을 이유로 AMI 사업을 전면 중단시켰다. 이후 전기사용 원격검침에서 발생하는 집단 데이터를 한전이 활용하느냐, 국가 목적으로 쓰느냐를 놓고 다시 논란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더 꼬여버렸다.
이런 와중에 PLC 칩 업체 뿐 아니라 AMI용 계량기, 모뎀, 데이터집합장치(DCU) 등 관련 중소업계는 사실상 폐업 수준의 타격을 입었다.
한 관련 기업 임원은 “국가차원 로드맵을 믿고 2012년부터 직원 20여명이 매달려 약 100억원을 투입해 한국형 PLC칩을 개발했지만, 지난 2년간 사업이 없었다”며 “할수 없이 직원을 줄이기도 했지만, 최근엔 비전이 없어 스스로 퇴사한 직원도 적지 않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그나마 지난해부터 한국도로공사가 PLC칩 기반의 LED 가로등 교체사업을 시작해 전전긍긍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PLC칩 사업을 접어야 할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이에 산업부는 한전과 협의를 통해 빠른 시일 내 사업이 재개될 수 있도록 조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만, 구체적 사업재개 시기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AMI 데이터의 활용가치를 높여 국민에게 더 나은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금 시장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며 “관련 업계가 힘들어 하는 만큼 하루빨리 개선책을 내놓고 사업이 재개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한국형 PLC칩 업체 판매 현황(자료:업체 종합)>
박태준 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