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브랜딩이 중요한 것처럼 정책에서도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 노사정 대타협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쉬운 해고라는 용어부터 잘못됐다. 기업 쪽 에서도 이게 무슨 쉬운 해고냐고 굳이 이름을 그렇게 붙여서 노동자 반발만 불러일으킨 것이다. 굳이 정확하게 명명하자면 저성과자 해고다. 그것도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그 자리에 맞지 않은, 월급 값을 못하는 노동자를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꼭 해고하라는 것도 아니고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니 상황이 막판까지 가기 전에는 쉽게 해고하지 못하도록 많은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일반 대중이 이름 그대로 받아들여 경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쉽게 해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정책을 추진하는 데 여론 도움이 없으면 이익집단 반발을 막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정책에 제대로 된 긍정적인, 미래지향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몇 년 전에 문제가 되었던 무상급식도 사실 따지고 보면 세금 급식이다.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문제 핵심은 누가 애들 점심값을 낼 것이냐다. 그런데 국가가 내면 무상이고, 부모가 내면 유상인 것처럼 사람들이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국가가 내면 무상인가? 지금 정부와 지자체 간에 한창 싸우고 있는 누리과정 예산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내면 무상인가? 우선은 부모가 직접 돈을 안내니까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걷어야 한다. 결국에는 국민, 부모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일종의 전형적인 조삼모사이다. 세금은 조금 내면서 많은 혜택을 달라고 하면 지금은 좋을 것 같지만 결국에는 국가가 부도나고 그렇게 되면 세금 적게 내는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리예산에서도 국가가 내면 지자체는 그 돈으로 지역 주민 관련된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지만 국가가 어려운데 그 지자체만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무상급식, 누리예산이 추구하는 비전이 들어 가 있는 미래지향적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생명보험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사망보험이라고 불러야 맞다. 살아서는 못 받고 죽어야 보험금을 타는 것이니 사망보험이다. 사망보험이라고 부르면 아무도 가입 안 할 테니 듣기 좋게 생명보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렇듯 실제 내용보다도 좀 더 긍정적이고 듣기 좋고 부르기 좋고 한번 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이름을 지으면 기분 나쁜 것도 사람들이 기분 좋게 받아 들인다.
쉬운 해고, 무상 급식, 누리 과정, 원샷법, 김영란법, 국회선진화법 등 지금 잘 진행 안 되는 정책들을 보면 그 이름부터가 뭐가 뭔지 잘 모르게 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 실질적인 내용과 이름이 괴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령 교수가 중부고속도로 제1터널, 제2터널을 백자터널, 청자터널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강의하시는 것을 들었다. 공무원이 관료적으로 이름을 붙이면 학생 번호 매기듯이 숫자를 가져다 붙이는 것이다. 분명하고 확실하기는 하다. 그러나 재미, 문화, 역사, 스토리가 없다. 지금도 흙수저, 금수저, 헬조선과 같이 젊은 사람끼리 새로운 은유적인, 부정적인, 계층의식을 조장하는 그런 용어들이 SNS를 통해서 계속 만들어 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기회만 있으면 떠나고 싶어 하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가 어떨까? 왜 밝고 유쾌하고 미래 지향적인 용어들은 없는가?
쉬운 해고, 누리 과정이 단순하게 이름 때문에만 파탄이 난 것은 아니지만 일반 대중 여론이 불길 같이 일어나서 노사정 합의를 지키라고 압력을 넣지 않는 것을 보면 일반 사람들의 이해도 쉬운 해고는 문자 그대로 사용자가 쉽게 해고하는 것이고, 무상급식은 남의 세금으로 우리 애들 점심먹이는 것이고, 누리과정은 누구든지 돈을 내서 우리 애들 돌봐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일반 대중은 그만들 싸우고 남한테 세금 걷어서 나한테 써라!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에서 하는 모든 복지정책에 세금이라는 말을 꼭 붙이도록 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정책담당자가 좀 더 국민, 여론 입장에서 신중하게 이름을 붙여야 한다.한 번 이름을 붙여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면 그 이름에서 오는 단순한 이미지 때문에 다들 그렇게 알게 되는 것이다.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누가 언제 세밀하게 읽어 보고 생각하고 올바르게 인식하겠는가? 먹고 살기도 바쁜데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모든 일에 첫 단추를 잘 끼어야 하듯이 모든 정책 이름을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이고, 비전이 들어가 있는 그런 이름으로 신중하게 지어야 한다. 그리고 여론에, 언론에 홍보하고, 대중과 소통을 해야 이기적인 정치가도 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조할 수밖에 없게 된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