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랙과 스타워즈 같은 우주를 항해하는 SF영화에서 에너지 방어막은 기본 중의 기본 설정이다.
개인은 물론 우주선, 심지어 행성까지도 각종 외부 공격을 막는 방어막을 친다. 방어막을 친 거대한 우주선 위로 쏟아지는 화력은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처럼 방어막을 타고 퍼진다.
지구 역시 일종의 우주선이다. 지구는 초속 400m로 자전하면서, 초속 30㎞로 태양 둘레를 돈다. 태양은 초속 230㎞로 우리 은하를 돌고 있다. 시속79만㎞에 해당한다.
우주하면 침묵의 검은 공간, 그 속에 푸른 지구가 고요하게 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만 실상 지구는 인간의 감각으로 따져보기 힘든 속도로 항해하고 있다.
태양은 지구 생명의 원천이지만, 태양이 분출하는 강력한 태양풍과 방사선은 생명에 치명적이다. 다행히 지구에는 이 태양과의 항해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어막이 쳐있다. 그 방어막은 단단한 벽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텅 빈 하늘, 허공으로 보이는 대기와 자기다. 그리고 오로라는 우주선 지구호의 에너지 방어막이 정상 작동 중임을 알려주는 신호다.
태양폭풍이 일어나면 태양은 시속 160만㎞로 100만K에 달하는 고온 입자를 방출한다. 지구 자기장은 이 광폭한 태양풍을 맞아 태양과 면한 쪽은 압축되고, 반대쪽으로는 긴 꼬리를 만들어낸다.
태양이 방출한 입자 대부분은 지구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우주 저편으로 넘어가지만, 일부는 지구 자기장의 꼬리 부분에 저장돼 있다가 자기 폭풍(Substorm)을 일으키며 지구로 되돌아온다. 이때 지구 대기와 충돌하며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오로라다.
태양에서 날아온 입자는 지구 대기의 산소나 질소와 충돌한다. 이때 충돌하는 기체에 따라 오로라 색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산소와 질소는 충돌로 얻은 에너지를 천천히 전자기파 형태로 방출한다. 산소는 0.74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녹색 빛을 방출하는데, 대략 상공 90~150㎞에서 벌어진다.
들뜬 상태의 산소가 바닥으로 떨어질 때가 돼야 붉은 빛이 나오는데, 이는 더 오랜 시간인 110초의 시간이 걸리고 150~300㎞의 높은 고도에서 발생한다. 오로라 하단에서 때로 보이는 검붉은 빛은 질소가 만드는 색이다. 오로라를 흔히 ‘하늘의 커튼’으로 비유하는데, 밝게 빛나는 백록색의 오로라가 커튼처럼 휘날릴 때 바람 때문으로 여길 수 있지만, 오로라의 현상은 대기의 움직임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텔레비전과 비슷하다. 태양의 입자들이 대기층을 브라운관 삼아 펼치는 쇼라고 할까.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다는 오로라.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여행객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로라는 주로 위도 65~70° 사이에서 나타난다. 90㎞ 상공이 오로라 하단부인 만큼 대기가 구름 없이 청정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남극과 북극 양극지 모두에서 관찰할 수 있지만, 남극 지방은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어려운 곳이다. 오로라 관광지는 북반구에 집중돼 있다. 유명한 곳은 캐나다 옐로나이프와 화이트호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노르웨이 트롭쇠, 스웨덴 아비스코 국립공원 등이다.
낮에는 오로라 현상이 일어도 맨눈으로 관찰이 어렵기 때문에 북반구의 밤이 있는 9월~3월이 적당한 때다. 오로라는 태양 활동의 결과물이므로, 11년 주기로 태양 흑점 활동이 활발해지는 때를 맞추면 확률이 높아진다.
캐나다와 같이 극지에 접한 나라들은 오로라 예보를 (http://auroraforecast.com, http://www.aurora-service.org/)하고 있다. 오로라지수(1~15)가 클수록 강한 오로라가 나타난다. 하지만 15분 단위로 갱신되는 이 오로라지수는 현재 상태를 알려줄 뿐 일주일이나 열흘, 한 달 뒤 오로라를 예측해주진 않는다. 오로라가 언제 일어나는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 폭풍은 지구와 달의 3분의 1지점에서 형성돼 초당 500㎞의 빠른 속도로 돌아온다. 자기 폭풍이 12만㎞를 되돌아오는 시간은 90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로라 관광의 최적지는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 한때는 한반도도 오로라 관측이 가능한 곳이었다. 삼국사기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도 오로라 관측 기록이 나타나는데, 그 수가 무려 700여 건에 달한다. 특히 고려시대의 기록은 232건에 달하며 색의 짙기와 분포 범위를 자세히 표현해 오로라의 세기까지 측정 가능할 정도라 한다.
2008년 영국의 천문학자 리처드 스테픈슨과 데이비드 밀스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분석해 1625~1628년 동안 96차례의 오로라 관련 기록을 찾아냈다.
오로라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이유는 뭘까. 지구의 자북극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북극은 캐나다 북쪽이지만 자북극은 매년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은 대략 연평균 40㎞의 속도지만 속도도 달라진다.
한편 오로라는 지구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지구처럼 자기장을 가진 행성은 오로라 현상을 볼 수 있다. 우리 태양계의 토성과 목성, 천왕성과 해왕성에서도 오로라가 목격된다. 단 목성의 오로라는 태양 입자 때문이 아니라 목성의 빠른 자전 속도 때문에 생기는 전기 에너지가 목성 대기와 충돌해서 생기는 것이다. 각 행성의 대기 성분에 따라 오로라의 색도 달라진다. 토성의 오로라는 붉은 색이며 높이가 1000㎞에 달한다.
태양계 행성들의 자기장이 벌이는 분투를 우리 인간이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구 대기 밖의 희박한 공기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오래 알지 못했다. 그러니 오로라 역시 긴 세월 신화와 전설의 영역에 속했다. 오로라가 태양에서 방출한 입자선 때문에 생기는 자기 교란이라는 것을 발견한 노르웨이 과학자 크리스티앙 비르켈란은 “극지방 상공에 유령처럼 너울거리는 초록색, 빨간색, 흰색 빛의 오로라 커튼을 설명하려는 가설들은 그 수만큼이나 기이하지만, 진실은 더 기이한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 진실은 옛날 사람들이 오로라를 하늘의 저주로 읽고 두려워한 것이 합당하다고 알려준다. 오로라는 우주적 위협이 실재한다는 증거니까. 우리가 알게 된 진실 하나는 지구의 대기와 자기가 이 우주를 항해하는 우리의 갑옷이자 방어막이라는 것.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주와 지구의 이야기를 다 알지 못한다.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