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개발자가 우리나라를 떠나고 있다. 대학생까지 한국을 떠나 해외 취업을 꿈꾼다. 높은 노동 강도, 낮은 임금, 조직 내 입지 등을 고려할 때 SW개발자에게 현실은 ‘헬조선(지옥 대한민국)’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W인력 해외유출이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모바일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앞서 게임개발자 상당수가 한국을 떠났다. 정부가 SW중심사회 구현을 외치지만 핵심인력은 척박한 국내 IT 환경을 견디기 어렵다.
최근 해외로 떠나는 SW 개발자들은 상당한 경력을 지녔거나 취업 준비생들이다. 수십년 노하우를 전수할 계층과 미래 성장동력이 모두 한국을 버리고 있는 셈이다.
한 대학에서 진행한 ‘10주 실리콘밸리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A씨는 한국으로 현지 업체에 취업했다. 미 현지 기업 근무 환경은 우리나라와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개발 업무를 지속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국내 대기업에 근무하는 B부장은 최근 중국 SW업체로부터 거액의 투자 제안을 받았다. SW 개발자로 입사해 20년 이상 근무한 회사를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 중국행을 택했다. 자신이 꿈꾼 개발회사를 세운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SW 개발자 실질 퇴직연령은 정확히 ‘사오정’이다. 45세면 퇴직한다. 통신기기·반도체(50세), 자동차·조선(55세) 분야와 비교해 10년이나 이르다. 은퇴하더라도 40대 개발자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다.
중국 IT업체가 이들을 끌어안고 있다. 한 SW개발업체 대표는 “최근 중국에서 우리나라 삼성, LG 등 부장급 개발자를 데려가기 위해 열 배 이상 높은 연봉을 제시한다”며 “40대 중후반 경험을 높게 평가해 회사까지 차려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개발자가 꿈인 대학생도 우리나라 기업을 기피한다. 이들은 취업목표를 대기업에서 외국계 IT기업 지사로, 최근에는 해외 현지기업으로 바꿨다. SW개발자 근무환경과 장래성을 감안할 때 국내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조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SW 개발자 주당 근무시간은 57.3시간이다. 다른 업종에 비해 15%나 길다. 2003년과 비교해 10년 동안 30분 줄었을 뿐이다. 초과근로 수당을 받는 노동자도 전체 10%밖에 안 된다.
한 SW학과 학생은 “선배로부터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며 “무엇보다 개발자를 단순 부품으로 생각하는 우리 IT 환경을 보면 개발자 비전이 밝지 않다”고 말했다.
성균관대학교, 국민대학교는 3~6개월 과정 미국 실리콘밸리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 기수 10명 내외 학생이 현지기업에 인턴으로 근무한다. 이 중 한국에 돌아오는 것을 포기하고 현지에 취업한 학생은 매년 발생한다. 6~7명이 현지에 취업했거나 절차를 밟고 있다.
이민석 국민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현재 5~6명 연수생이 미국 현지 기업에 취업했거나 이를 위한 비자 발급 과정에 있다”며 “국내 대기업 선발기준은 스펙에 집중되고 스타트업은 입지가 열악하다”고 말했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조 관계자는 “개발자를 특정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와서 고쳐주는 소모품으로 인식한다”며 “회사와 성장하는 인력양성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다면 우수 SW 개발 인력의 해외유출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