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배추 속살에 파란 채 부추 쪽파 생강 넣고 마늘 넣고 멸치 젓갈 위에 듬성듬성 뿌린 고춧가루 흉내는 다 같은데 맛이 달라 흉내 낼 수 없고 빌려 올 수 없는 손맛, 어머니 손맛’.
김용수 시인의 ‘김치’라는 시다. 김치, 침채(沈菜)는 무, 배추, 오이, 같은 야채를 소금에 절인 다음 양념을 해 같이 버무려 넣고 익힌 반찬이다. 중국에서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김치는 우리 고유 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 현대화 바람과 함께 도시화 여파로 아파트 인구가 이제 70%에 육박한다. 가가호호 아파트에서는 모든 집이 장독대를 가질 수 없는 형편이어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필수식품인 김치를 담가서 오랫동안 저장하고 보존하기 위한 김치냉장고에 강한 욕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일반냉장고는 거의 모든 가정에 보급돼 있다. 하지만 김치냉장고는 일반냉장고보다 사용빈도가 적은 만큼 상대적으로 수명이 긴 김치냉장고가 계속해서 팔리자면 첨단의 그 어떤, 새롭고 매력적인 상품으로 소비자의 까다로운 호기심을 자극해야만 한다. 그래서 고심 끝에 제조업체에서는 사용상 편리한 일반냉장고와 김치냉장고의 기능과 좋은 점을 고루 갖춘 ‘스탠드’ 김치냉장고 생산비율을 계속 늘려나가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실제로 김치냉장고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980년 중반이었으나, 그때는 너무 시기가 일렀다. 아깝게도 첫 번째는 실패했으나 이후 약 10년 뒤 1995년에 대유위니아의 전신 만도기계는 우리나라 고유의 김치라는 뜻을 새겨 ‘딤채’로 김치냉장고를 출시했다. 여기에 소비자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아 일반냉장고 다음으로 소비자가 애용하는 필수 백색가전 반열에 올랐고 연간 1조원 판매 시장의 문을 열었다.
첫해 및 초기에는 연간 5000대 정도였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판매대수가 증가해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대망의 100만대 시대가 열리면서 극성기를 맞아 일반냉장고와 어깨를 나란히 겨누게 됐다.
이제 김치냉장고는 각 가정 필수제품으로 자리매김했고 보급률도 90% 가까이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초창기에 52리터였던 것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 200리터까지 크기가 불어났다. 이후부터는 기타 가전제품에서와 같이 제조자들은 사용자의 편리함과 편의성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개별 온도제어기능은 이제 필수가 됐고 김치보관과 숙성온도는 기본이 된 지 오래다. 냉장이나 냉동이 같이 맞춤 보관이 항상 가능한 김치냉장고를 우리 식성과 입맛에 맞게 출시하게 됐다.
이제 김치냉장고 국내 보급률이 어느덧 90%를 넘기면서 대형가전으로서 면모 갖췄다.
최근에는 김치냉장고는 김치뿐만 아니라 물기 있는 식품, 신선도가 중요한 식료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 유행하던 뚜껑형이 아닌 스탠드형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일반냉장고 대용품이 아닌 거의 유사한 형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김치냉장고는 기본적으로 일반냉장고와는 기능과 용도 면에서 차이가 있다. 김치냉장고는 계속해서 일정한 온도와 수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저장실 자체를 냉각시키는 직접냉각방식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간접냉각방식을 채택해서 정온(定溫)을 유지하는 김치냉장고를 출시하는 제조업체들이 늘어나면서 냉각방식만으로 김치냉장고와 일반냉장고를 나누는 구분 자체가 애매해졌다.
이같이 김치냉장고와 일반냉장고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김치냉장고는 김치뿐만 아니라 선도 있는 일반식품 보관까지도 가능해지고 있다. 앞으로 5~6년 후면 일반냉장고는 서서히 물러나고 김치냉장고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울 것이다. 이에 제조자의 끊임없는 연구와 혁신이 있어야 한다.
나경수 (사)전자정보인협회장 eniclub@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