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국민이 아프다

8월 25일 0시 박근혜정부가 임기 절반을 돌아 후반전으로 넘어간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달에 ‘집권 2막’ 시계는 돌기 시작한다. 탈도 많았고, 무엇보다 끔찍한 사고가 잦았던 전반기를 마치고 ‘국태안민(나라가 태평스럽고, 국민은 평안한)’의 후반기가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 한결같을 것이다.

예상은 낙관적이지 않다.

바닥경제가 문제고 돌아선 민심도 예전과 다르다. 당·정·청 불협화음도 극에 달했다. ‘해도 해도 안되는’ 불통의 트라우마가 ‘민생 사면·복권’만으로 치유될지 의심스럽다. 경제 회복과 정치 통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그간 쌓인 국민 실망과 피로도는 너무 깊고 크다.

정치를 왜 면포에 번지는 물 같다고 했겠는가. 면포처럼 액체를 잘 흡수하고, 빨아들이는 것도 없다. 그것에 창포물이나 겨자액이 입혀지면 아름답디 아름다운 색깔옷 천이 되지만, 악취가 진동하는 똥·오줌이 스며들면 기저귀밖에 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국민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정서가 정치의 전부이자, 본디 모습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 통치 스타일에 대한 반감 중에 ‘장관 자리’ 문제도 분명히 하나로 들어 있다. 국민은 생활이나 사업, 경제·사회 활동과 관련된 대부분 정책은 장관들로부터 실현되는 것으로 안다. 본인과는 멀리 있는 ‘관직’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대통령보다는 내 세금, 내 교육, 내 안전, 내 건강을 관장하고 책임지는 자리에 이들이 앉았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다.

몇 명 장관은 벌써 총선 정치판에 가 있다. 몇몇은 아예 복지부동이다. 공무원은 요지부동이고, 정책과 제도 개혁은 ‘속도’가 나지 않는다. 여당 원내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장관 한 명은 대통령 임기 초기부터 반발하며 국무위원 자리를 내찼던 것처럼 레임덕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장관에게 “소신 갖고 일하세요”라는 말이 통할 리 없다. 대통령만 장관을 믿고, 국민은 이런 장관을 못미더워 한다.

국민 보기엔 딱한 일이다.

항간에 의하면 대통령이 새로운 장관을 내세우자니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워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국격을 위해선 저잣거리 농으로 남아야 할 사안이다. 청문회 문턱조차 넘지 못할 ‘장관 풀(Pool)’밖에 갖지 못했다면 국가적 ‘재앙’이다.

내년 4월 총선이 또 한 번 내각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선거에 강한 유력주자는 빠질 테고, 집권여당을 유지하려 동원되는 장관도 몇몇 나올 게다. 몇몇은 해당 분야 인재풀 부족으로 ‘장수 장관’이라는 감투를 또 쓸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초창기 광우병 파동을 겪을 때 ‘왜 내 주위엔, 내 마음을 갖고 국민을 설득할 장관이 없냐’고 토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경제가 어렵다. 국민정서는 바닥이다. 세월호가, 메르스가 아팠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는 외국 투기자본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LG전자 역시 내수와 수출이 어렵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자랑스럽던 조선산업도 위기다.

작금의 ‘국난’ 책임은 장관에게도 있다. 열정이 없으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그 부처 장관은 바로 개혁대상이다. 개혁 주체는 장관이 아니라 국민이다. 박근혜정부도 다음 달 반환점을 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때 개혁은 시작된다. 국민이 아프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