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화장품 고시 시행 눈앞...인증기관, 인증마크, 유기농-천연 구분 전무 ‘허점’
[코스인코리아닷컴 장미란 기자] 좀 더 자연에 가까운 유기농, 천연 화장품 원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유기농 화장품 시장도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정부도 그동안 업계 자율에 맡겨온 유기농 화장품 가이드라인을 손 봐 유기농 화장품 고시가 7월 1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유기농 화장품 고시 7월 1일 시행
정부는 지난해 12월 유기농 화장품 정의와 기준, 허용 원료, 허용 공정 등을 담은 ‘유기농 화장품의 기준에 관한 규정’을 제정 고시하고 6개월의 경과기간을 거쳐 오는 7월 1일 시행에 들어간다.
유기농 화장품 고시는 7월부터 시중에 판매되는 유기농 화장품은 원료의 10% 이상을 유기농 화장품 정의에 따른 원료로 함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유기농 원료’란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유기농수산물을 의미한다. 또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외국 정부에서 정한 기준에 따른 인증기관으로부터 유기농수산물로 인정받거나 이를 이 고시에서 허용하는 물리적 공정에 따라 가공한 것이다.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에 등록된 인증기관으로부터 유기농 원료를 함유한 제품도 유기농 화장품으로 인정된다.
특히 시판하는 유기농 화장품은 전체 구성 원료 중 10% 이상을 화장품법이 규정한 유기농 원료로 구성돼야 하며 합성원료는 유기농 화장품의 제조에 사용할 수 없다.
다만 유기농 화장품의 품질과 안전을 위해 필요하나 따로 자연에서 대체하기 곤란한 원료는 정부가 규정한 원료에 한해 5% 이내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정부는 이 같은 유기농 화장품의 원료, 함량 뿐 아니라 제조공정, 작업장 및 제조설비, 포장, 보관 등 유기농 화장품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했다.
인증기관·인증마크 없는 ‘반쪽’ 제도 지적 잇따라
그러나 유기농 화장품 고시의 본격 시행에 앞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유기농 화장품 인증기관이나 인증마크 등 인증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가 이뤄지면서 ‘반쪽’ 제도 마련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실제 유기농 화장품 관련 기준이 법제화되는 과정에서 국내 유기농 화장품 인증기관 설립이나 운영은 추진되지 않았다. 정부가 ‘인증’한 유기농 화장품임을 입증할 인증마크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에 유기농 화장품 고시가 이뤄지더라도 유기농 화장품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해외 인증기관에서 따로 인증을 받거나 수입 유기농 원료를 사용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게 화장품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정부 차원에서 유기농 화장품 인증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의 경우 규정에 따라 정부 주도하에 인증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 USDA, 프랑스 에코서트(ECOCERT), 일본 JAS 등 민간 차원의 유기농 화장품 인증마크 제도를 운영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유기농 원료를 수입, 제공하는 하나무역 지준홍 대표는 “오는 7월 1일부터 유기농 화장품 고시가 시행되지만 현재 국내에는 유기농 인증기관이 없다. 특히 유기농 인증마크의 경우 소비자의 신뢰도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대한민국 만의 인증마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기농 화장품 EO를 판매하는 폴세 이중기 대표도 “국내 유기농 화장품 인증기관이 없으면서 유기농 화장품 관련 제도를 마련한 것은 엄청난 모순”이라며 “인증받을 곳 없이 규정만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지적했다.
유기농 화장품은 있고, 천연 화장품은 없다?
유기농 화장품 고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유기농 화장품(Organic-Cosmetic)과 천연 화장품(Natural-Cosmetic)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해외의 경우 유기농 화장품과 천연 화장품을 구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유기농 화장품의 기준에 관한 규정’만 만들어졌다.
국내 현행 화장품 법령에도 천연 화장품에 대해 별도로 분류된 정의가 없다. 다만 유기농 화장품 표시광고 가이드라인 제2조에 식물원료, 동물성 유래, 미네랄 유래 원료의 용어를 정의하고 있는데 이 같은 원료를 주로 함유한 화장품을 천연 화장품으로 이름 붙일 수 있다.
국내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오썸(O’SUM)’을 생산하는 콧데의 장동일 대표가 꼬집는 유기농 화장품 관련 제도의 허점도 여기에 있다.
장동일 대표는 “유기농 화장품과 천연 화장품은 ‘초록동색’의 같은 개념”이라며 “그런데 하나는 정의를 하고 하나는 정의를 하지 않아서 한쪽이 다른 한쪽의 의미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유기농 화장품의 경우 유기농 원료를 10% 이상 넣고 또 그것을 포함해 천연 원료를 95% 넣어야 ‘유기농’이라고 표현하고 광고할 수 있다. 하지만 유사한 개념과 정서를 갖는 천연 화장품은 법적 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0.01%의 식물 추출물만 넣어도 천연 화장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
화장품법 제12조 및 동법 시행규칙 제15조 제2호 아목에 따라 품질, 효능 등에 관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거나 확인되지 않았을 경우 이를 광고하지 말도록 한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0.01%의 천연물을 넣으면 ‘천연’이라고 표현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천연물 원료를 90% 넣은 것과 0.01%를 넣은 것은 겉으로 봐서는 구분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그 차이를 알기 어렵다. 하지만 원료 값의 차이 때문에 많은 개발자들이 최소한의 양을 넣고도 ‘천연’을 홍보하고, 원료업자들도 이를 이용할 수 있다.
장동일 대표는 “유기농 화장품은 이렇게 할 수 없는 법적 환경을 만들어 놨지만 천연 화장품은 그렇지 않아 산업 전체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왜곡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천연 화장품, 유기농 화장품 등 친환경 산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실제보다 더 착하고 가치 있게 보이게 홍보하는 그린워시(green wash)”라며 “천연 화장품의 법적 정의를 하지 않은 것이 ‘1’만큼 친환경적인 화장품이 ‘10’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코스인코리아닷컴 장미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