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결합상품 규제 정책은 소비자 중심에서 판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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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세계경제포럼은 ‘2015 글로벌 IT보고서’에서 143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 순위를 발표했다.

각국의 ICT 현황과 활용 정도를 나타내는 ‘네트워크 준비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두 단계 낮아진 12위를 기록, 결국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보고서에서는 국가 간 ICT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세계경제포럼은 우리나라 순위가 하락한 주요 원인으로 ‘정치 및 규제적 환경조성 미흡’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ICT 관련 입법, 사업자 간 분쟁 해결을 위한 제도적 효율성, 규제 개선을 위한 제도적 효율성 항목이 각각 112위, 82위, 113위를 차지해 전체 순위를 크게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그간 세계 최고 수준의 ICT 환경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던 통신 및 ICT 정책이 지금은 효율성이 낮아 오히려 성장을 지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평가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단지 규제 당국의 비효율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최근 우리나라 방송통신업계에서 벌어지는 사업자 간 논쟁을 보면 세계경제포럼이 지적한 부분의 근본적 원인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작년 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통신시장은 단말기유통개선법 도입 찬반을 비롯해 이 법안 실효성 등 논쟁으로 뜨거웠다.

이 법안이 통신사업자와 단말기 제조사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인지, 아니면 고객에게 주어지는 혜택의 차별성을 없애는 것이 소비자를 위한 최선의 목표인지 등의 논란이 거듭됐다.

그러나 소비자는 단지 이동통신 사업자를 위한 법이라며, 시장논리에서 벗어난 과잉규제로 단말기 가격만 올렸다고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통신사업자와 단말기 제조사가 지원하는 금액의 분리공시를 놓고도 사업자 간 분쟁이 격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논쟁은 법안 시행 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단말기유통개선법 폐지 법안이 나오는 등 논란이 지속되고 있으며, 법 효과에 대한 평가도 분분하다. 결국 세계경제포럼에서도 이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지표에 반영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말기유통개선법에 이어 또다시 사업자 간 논쟁이 격화되는 부분이 바로 결합상품 판매에 대한 시장지배력 전이 논란이다.

결합상품을 통한 할인이 특정 지배적 사업자의 지배력 유지 및 확대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장단기적 평가와 경계는 필요하지만, 현재 결합판매와 관련한 논란의 가장 큰 문제는 규제 강화로 소비자 편익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4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수의 소비자가 결합상품 이용에 만족의사를 표시했고, 특히 결합상품이 가계통신비 절감효과가 높다는 것을 주요한 만족 이유로 꼽고 있다.

소비자가 만족하고 있으며, 또 통신비 절감효과가 높다고 인식하는 정책에 대해 공급자인 사업자의 영역다툼 논리를 배경으로 이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책으로서의 설득력은 약하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해외 주요국은 방송-통신, 통신-통신 결합판매와 관련한 별다른 규제가 없으며, 이용자는 다양한 결합상품 구성으로 요금할인 등 편익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업자와 공급자 관점의 논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소비자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하고, 특히 가계통신비 절감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결합판매를 위축시키는 규제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박기영 순천대학교 교수 plpm@sun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