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아다르(Eytan Adar)와 후버맨(Bernardo A. Huberman)은 P2P 파일공유 네트워크 그누텔라(Gnutella) 트래픽을 분석하다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네트워크 이용자 약 70%가 파일을 공유하지 않았고 상위 1%가 50% 데이터 요청을 처리하고 있었다. 많은 이용자가 공유 파일 제공자에게 무임승차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용자 무임승차로 결국 공유지인 그누텔라 전체 시스템 성능이 저하되고,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분석하며 이를 ‘디지털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우려했던 문제가 지금 디지털 환경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 공유지 비극을 더 이상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는다. 대다수가 무임승차할 것이라던 우려와 달리 디지털 공유지에 많은 사람이 자신이 창작한 디지털 꽃과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유된 꽃과 나무는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연결됐고 디지털 공유지는 점점 더 커져갔다.
현재 우리는 세계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들어 놓은 수많은 디지털 공유지 숲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01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인터넷으로 공유하기 시작한 위키피디아(WikiPedia)는 최고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넘어 가장 영향력 있는 백과사전이 됐다.
2015년 3월 말 기준으로 484만건 글이 등록됐고 195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으며 14만명이 넘는 활동가가 운영하고 있다.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국립 도서관 등 유럽 연합 도서관과 전문기관이 보유한 서적, 음원,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수집한 전자도서관 프로젝트 ‘유로피아나’(Europeana)는 2014년 기준 유럽 36개국 3000여 기관이 제공한 3200만건 콘텐츠를 바탕으로 최고의 디지털 도서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공유지 숲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민간 분야에서는 크리에이티브커먼스코리아(CC Korea)가 7년 전부터 저작자 공유표시인 크리에이티브커먼스 라이선스(CCL) 보급운동을 펼쳐왔다. CC코리아의 활동으로 국내 인터넷 환경에서는 CCL이 보편적인 저작물 공유 표시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 모임인 ‘책따세’는 저작자 저작권 기부로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또 공유와 협력으로 교과서 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빅북’(BigBook)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고 있다.
공공 분야에서도 디지털 공유지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정부 3.0 정책에 따라 공공데이터를 민간에게 공개하는 공공데이터포털(data.go.kr)은 705개 기관에서 1만2084종 파일데이터와 1647종 오픈 API를 개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저작권 보호기간 만료저작물, 저작권을 기증받은 저작물, CCL 저작물,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표시(KOGL) 저작물 등 국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106만건 공유저작물을 한군데에 모아 서비스하는 ‘공유마당’(gongu.copyright.or.kr)도 운영 중이다.
2014년 7월 1일부터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공공저작물을 개방해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디지털로 이뤄진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사람과 소통하고 인터넷으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삶은 다양한 스마트기기로 디지털화되고 사물끼리 서로 통신하며 우리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디지털 공유지가 있고 우리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아다르와 후버맨이 우려했던 무임승차 문제는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되고 있으며 이러한 믿음은 앞으로 만들어질 디지털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오승종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 osj@copyrigh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