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만나게 되는 하얀 눈은 무조건 사랑할 수도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애증의 대상이다.
푹신하게 쌓여서 통행을 방해하고 쉽게 미끄러져 불안함을 주는 눈의 단점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있다.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스키’와 ‘스노보드’다.
둘 중 원조는 당연히 스키다. 스키는 인류 역사와 함께했다고 말할 정도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스키 장비 중 핵심은 플레이트다. 눈 위에서 잘 미끄러짐과 동시에 조종에 따라 정확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바닥이 평평한 스키 플레이트는 왜 그렇게 쉽게 미끄러지는 것일까. 눈과 플레이트 모두 고체이므로 당연히 마찰력이 생겨서 속도가 줄어드는 게 정상이 아닐까.
스키 플레이트는 중력과 마찰력이라는 두 가지의 힘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미끄러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중력은 물체를 지구 중심으로 끌어당긴다. 평평한 곳에서는 운동 방향과 직각이 되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지만 경사가 심할수록 중력의 작용이 운동 방향에 가까워져 이동이 쉬워진다. 산이 높은 교외에 스키장이 위치한 이유다.
마찰력을 줄이는 것도 플레이트를 미끄러지게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고체보다는 액체의 마찰력이 덜하므로 눈에 열을 가해 녹이면 그만큼 쉽게 미끄러질 수 있다.
마찰력을 줄여 미끄러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스노보드도 마찬가지다. 1963년 중학교 2학년의 미국인 톰 심스(Tom Sims)는 크리스마스 휴가 때도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도록 서핑보드를 개량해 눈 위에서 타는 ‘스너퍼(Snurfer)’를 선보였다. 1971년에는 ‘스노보드’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키와 스노보드를 제대로 즐기려면 마찰력을 적절히 높여주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마찰력이 없으면 경사지를 내려오면서 속도가 점점 높아지고 결국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스키와 스노보드는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속도를 높이되 적절한 순간에 ‘턴’이라는 회전 운동을 실행한다.
평평한 바닥에 스키 플레이트를 높고 옆에서 바라보면 ‘캠버(camber)’라 불리는 가운데 부분이 약간 떠 있다. 사람이 플레이트 위에 올라서면 무게에 의해 캠버가 땅에 닿으면서 전체가 평평해져 미끄러짐이 극대화된다. 반면에 턴을 할 때는 몸과 다리를 한쪽으로 기울여 ‘에지(edge)’라 불리는 플레이트 양쪽 날이 눈 속을 파고들게 한다. 이때는 캠버가 수평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는 ‘리버스 캠버(reverse camber)’ 현상이 발생해 마찰력이 커진다. 또한 눈과 플레이트 사이에 곡선이 형성돼 자연스럽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
스노보드 기술 중 재빠르게 회전하며 고속으로 하강하는 ‘카빙 턴(carving turn)’은 옆 날 에지만 이용하기 때문에 보드 밑바닥 면 전체를 사용하는 ‘슬립 턴(slip turn)’ 기술보다 속도를 30% 이상 높일 수 있다. 스키와 스노보드 선수들이 몸을 심하게 기울이는 것도 에지를 세워서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카빙 턴을 할 때는 방향 전환에 맞춰 무게 중심을 세심하게 이동시켜야 한다. 몸을 심하게 기울이면 중력 작용이 커져 바닥에 쓰러질 위험이 있고, 반대로 몸을 기울이지 않으면 원심력으로 인해 회전 중심 바깥쪽으로 넘어진다. 두 힘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이 카빙 턴의 비결이다.
임동욱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