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뜨겁다. 한쪽에선 과도한 게임이 아이들의 인성과 학업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기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고, 반대 측에선 게임이 K팝 수출액을 열 배 이상 능가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라고 한다.
질문을 조금 바꿔 보자. 아이들의 학업성적이 오르는 게임에 빠져 있다면 찬성할 것인가? 또 게임 말고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 있다면 게임이 없어져도 된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 역시 답을 하기 만만치 않다.
게임은 고도로 조직화된 형태, 즉 최고로 발달한 놀이양식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을 이해하려면 놀이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는 인간의 본성(호모 루덴스)이라는 주장을 한 하위징아(Huizinga)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시키지 않더라도 놀이에 열중하는 본능을 가졌다. 그렇기에 놀이는 아이들의 권리라고 ‘UN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명문화돼 있다.
놀이는 그 자체로 재미있는 활동이다. 재미의 심리학적 구조를 설명한 이론 중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재미있는 놀이의 가장 큰 특성은 ‘자발성’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주도한다는 말이다. 이런 놀이는 어려울수록 재미가 증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조금 큰 아이들은 어린 아이들이 하는 쉬운 놀이를 ‘유치한 놀이’라고 외면한다.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하는 놀이를 통해 치열하게 경쟁도 하지만 서로를 인정해주고 인정받으면서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존재로서 진솔한 경험을 겪는다.
게임이 없어진 아이들을 가상해보자. 우선 이 아이들은 스스로 주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늘 누군가의 지시나 감독을 받아야만 한다. 공부도 학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줘야 하고, 어떤 진로를 선택할 것인지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할 것인지도 누군가의 조언 없인 불안하다. 또 게임이 사라진 아이들은 실패를 다루는 방법도 다르다. 즉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유능감을 배운 것이 아니라 실패는 ‘능력 없음’의 증거이자 판결로 인식한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을 일, 쉬운 일만 골라하는 소극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특히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능가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기보다 회피하거나, 반대로 능력이 떨어진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자신에게 핸디캡을 부과해 접어주는 방법 대신 그냥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친구들과 경쟁하고 타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간다. 어떻게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한다. 이런 방법을 일상용어로는 ‘노하우’라고 부르며, 심리학 용어로는 ‘암묵적 지식(implicit knowledge)’이라 한다. 어떻게 부르든 이런 경험은 책이나 누구의 가르침으로 배울 수 없는 삶의 필수적인 지식이기에 걷기, 말하기와 같이 본능적인 영역에 속한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노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자 사회적으로 중요한 권리다. 그리고 아이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건강한 사회와 성인들의 의무다. 게임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이 어른들의 의무를 회피하고자 하는 얄팍한 술책은 아니었는지 논쟁의 양 당사자 모두 돌아볼 일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zzazan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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