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공익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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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행정부의 권한이 없을 때가 있을까. 과연 대한민국이 정부, 국회, 법원의 삼권이 분리된 나라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700㎒ 주파수 할당 방안 공청회’는 권한을 읽어버린 행정부의 씁쓸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국회가 정부인지, 국회의원이 정책 당국자인지 정체성이 헷갈렸다.

‘삼권 분리’는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민주적 장치다. 행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면, 국회가 타당성을 검토하는 프로세스를 밟아왔다. 정부와 국회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법원에 판단을 맡겼다. 어느 한 쪽도 독주할 수 없도록 견제하면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지난주 공청회는 국회가 아예 정책 수립까지 담당하는 자리로 변질됐다. 국회의원들이 주파수 할당 방향부터 세부적인 정책까지 내놓았다. 급기야 정부 관료에게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마치 심판이 선수로 뛰겠다는 풍경과 다름없었다.

정부가 이처럼 ‘핫바지’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국회가 정책 감시 권한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무원들의 수동적인 대처도 한몫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있다. 바로 제4부로 불리는 언론 권력에 국회가 눈치를 보고 야합했기 때문이다.

KBS는 지난 한 달 저녁 종합 뉴스에 13차례 700㎒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MBC가 9번, SBS도 10번을 내보냈다. 700㎒ 주파수를 방송용으로 써야 한다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MBC는 지난주 공청회를 아예 생중계했다. 방송 카메라를 들이민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은 일방적으로 지상파의 편을 들어줬다. 여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상파에 행여 찍힐까봐 노심초사했다.

지상파는 700㎒를 가져가야 하는 이유로 공익성을 내세웠다. UHD 방송을 보편적 무료 서비스로 방영하려면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난주 공청회에서 홍인기 경희대 교수는 “(국민의) 90% 이상이 지상파를 안 보는데 굳이 지상파가 UHD를 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지상파 직접 수신 가구가 7%도 안 되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5500만명이 이용하는 통신과 비교하면 보편적 서비스라고 말 자체가 부끄럽다는 지적이었다.

주파수는 유한한 자원이다. 국민 편익과 공공성이 배분의 첫 번째 원칙이 돼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TV를 모바일기기나 스트리밍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상파 직접 수신율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연 어떤 것이 국민 편익과 공공성에 부합하는지 삼척동자도 예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국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정부도 움츠러들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정부 권력이 무장 해제된 상황에서 소신을 이야기할 공무원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사익보다 공익을 생각해야 할 마지막 보루는 행정부다. 이마저 무너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마지막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사명감이 요구되는 때다. 공무원은 오로지 공익만 보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장지영 정보통신방송부 부장 jyaj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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