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전쟁, 전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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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생겨난 이후, 이 황금보검은 자신의 제왕이 느닷없이 나타날 때까지 치열한 어둠속에 숨어지냈다. 그런데 드디어 느닷없는 제왕을 찾은 것이다. 전쟁의 신 마르스(Mars)가 준비해 놓았다는 황금보검은, 방만한 살인을 위한 검이 아니다. 세상을 제압할 단 하나의 제왕을 수호하는 검, 그 황금보검이 내게 왔다. 그 황금보검의 운명이 내게 왔다.”
전설을 내려받은 아틸라의 멀리 퍼지는 노래는 훈의 전사들을 말처럼 히잉 거리게 만들었다. 히이잉, 히이잉, 불순하고 뻔뻔한 훈의 전사들은 막무가내로 한혈마였다. 한혈마의 마답비연(馬踏飛燕)이었다.
“나는 우리 족속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것이다.”
아틸라의 그악한 선언에 훈의 전사들은 전쟁을 도발하고 있었다.
“전쟁, 전쟁, 전쟁.”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졌다. 마치 훈의 화살비가 도래하는 듯 했다. 휘이익 휘이익, 하늘이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독수리다.”
누군가의 비명이 여기저기 넘실거렸다. 수많은 검은독수리들이 전쟁의 검은 하늘을 몰고오고 있었다. 훈의 전사들은 전쟁의 검은 하늘에 위험한 갈채를 바쳤다.
“전쟁, 전쟁, 전쟁.”
“로마는 우리에게 굴복할 것입니다.”
콘스탄티우스가 눈알이 벌개지도록 악을 썼다.
“로마를 넘어 동쪽 끝까지 가야합니다.”
오에스테스도 악을 썼다. 입에서 피가 튀었다.
"전쟁, 전쟁, 전쟁.“
훈의 전사들은 모두 미쳐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느닷없이 사라질 스스로의 운명을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훈의 전사들은 술을 통째 들고 마셨다.
“마지막 술이다. 이제 로마를 넘기 전까지 술은 없을 것이다.”
당대(當代)의 무시무시한 살육을 앞둔 아틸라는 아직 갈채에 걸려들지 않았다.
아틸라의 세 아들이 다가왔다. 엘락, 덴기지흐, 셋째 아들 에르낙은 전쟁에 대한 지나친 동경으로 벌써 눈빛이 번들거렸다. 아틸라는 에르낙만 품에 안았다. 큰 아들 엘락이 아버지 아틸라에게 술잔을 바쳤다. 그러나 아틸라는 술잔을 받지 않았다. 그는 떠들썩하게 전쟁을 떠드는 훈의 전사들 가운데 완벽하게 혼자, 아틸라 더 훈이었다. 아틸라는 황금보검을 만졌다. 애써 무덤덤한 그의 손이 살짝 떨렸다. 이제 당대의 역사는 아틸라의 수중에 들어왔다. 아틸라는 에르낙의 손을 잡아 황금보검을 만지게 했다. 에르낙은 순간 불에 데인듯이 놀라며 손을 떼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황금보검의 가치를 따르겠습니다.”
아틸라는 에르낙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제 실라를 가리라. 실라를 가리라.”
“앗, 아버지.”
에르낙이 외쳤다. 독수리들이 아직도 빽빽한 전쟁의 하늘, 그 어딘가에서 황금빛 갈기가 희미하게 명멸했다. 아틸라가 벌떡 일어났다. 결코 물러서지 않을 위대한 제국의 풍광이었다.
“그래, 전쟁이다.”
훈의 칸을 넘어 이제 세상의 제왕이 되어버린 아틸라 앞에 에르낙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왕자님, 아틸라 제왕님은 저희를 위해서 이렇게 자객을 보내셨습니다.”
에첼은 또 다시 에첼다웠다. 에첼은 그동안의 고달픈 정염이었고 그동안의 초원의 암내였고 그동안의 연지산(燕支山)의 홍화였다.
“복호가 고구려로 향한 것 같소. 우리도 그쪽으로 가야한다.”
“자객이 혼자라고 해서 혼자라고 보시면 안됩니다. 아틸라와 훈이 있습니다.”
미사흔은 에첼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 신라는 왜소한 국가가 아니오. 나는 그게 또 다시 가슴이 벅차다오.”
둥둥 둥둥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