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스토리] <87> `합격자소서`는 없다

취업준비생은 잘 구성된 스토리 전개와 멋지게 포장된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가 합격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인터넷에는 ‘자소서 잘 쓴 예’가 넘쳐난다. 지원자는 이렇게 검색된 예시를 보고나면, 글 솜씨를 뽐내며 각종 재치 있는 형용사와 ‘자기자랑’으로 가득한 유려한 문장이 마치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여 합격시킬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오랫동안 채용팀장으로서 대졸공채를 진행한 김태성 컨설턴트는 “합격자소서라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자료”라며 지원자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펀미디어가 김태성 컨설턴트의 조언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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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소서에 대한 조언을 전한 김태성 컨설턴트

◇자소서 잘 쓴 예 검색하는 취준생, 과연 옳을까

김 컨설턴트는 지원자가 자기소개서를 잘 쓴 예시를 검색해 조금이라도 자소서를 유려한 글로 작성하고픈 마음은 이해가 되면서 이런 현실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 공채에서 10만명의 자소서를 평가하면서 지원자의 글짓기 노력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헛수고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예전처럼 지원서에 있는 스펙 위주로 평가하지 않고 자기소개서를 함께 보려고 하는가? 기업들이 굳이 그 막대한 노력을 들여서 갑자기 글을 잘 쓰는 작가를 뽑고 싶어졌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기업의 전략이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바뀌면서 필요한 인재상도 달라졌다. 이런 인재상의 변화에 따른 인재 선발을 기존의 스펙 위주 방식으로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기업은 인재상과 직무역량에 부합하는 지원자를 찾고자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자소서는 이를 위한 대표적 방법이 됐다.

이런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학생과 컨설턴트는 과거의 스펙 위주 평가방식과 같은 방법으로 합격의 공식을 만들어 내고 모든 지원자의 자소서를 규격화시켜 자기소개서 잘 쓴 예, 일명 ‘합격자소서’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이를 공유하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기업과 학생 간의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생겨난 회색지대에 함량미달의 비즈니스가 뛰어들면서 취업준비생은 더 헤매고 있다.

◇서류전형=스펙+자소서의 결과물임을 기억해야

그렇다면, 아래의 사례를 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합격자소서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자. ‘장수백’과 ‘나소서’ 두 명의 친구가 같은 기업 같은 직무에 지원을 했다. 그런데 결과는 아쉽게도 한 명은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나머지 한 명은 탈락했다. 서류전형에서 받은 점수는 각각 장수백은 130점, 나소서는 110점을 받았다. 누가 합격자인가? 당연히 장수백이 합격자이다. 그리고 나소서는 탈락자이다.

장수백은 합격의 기쁜 마음으로 본인의 자기소개서를 자소서 잘 쓴 예로 취업포털에 올린다. 후배들을 위해 자소서를 공유하고, 신앙 간증하듯 여기저기서 성공수기를 강의하기도 한다. 많은 취업준비생은 이 합격자의 자소서를 자소서 잘 쓴 예로 인식해 돈 주고 다운 받아서 쓴다. 반면에 나소서는 탈락의 아픔을 딛고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지며 자소서를 쓰고 있다. 나소서의 자소서는 탈락 자소서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럼 서류평가 상세내역을 보자. 서류심사는 자소서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일명 스펙과 자소서를 종합해서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장수백의 자소서 평가점수는 40점이고 스펙 점수는 90점이다. 나소서의 자소서 점수는 90점이고 스펙점수는 20점이다. 합격자소서는 어떤 것인가? 여러분은 어떤 자소서를 내려 받아서 참고하고 싶은가? 아직도 40점짜리 합격자 자소서를 내려 받아 참고할 것인가. 아니면 90점짜리 탈락자 자소서를 참고할 것인가.

CJ와 IBM에서 채용팀장을 하면서 엉망인 자소서가 잘 쓴 예로 둔갑해 합격자소서로 학생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합격한 지원자는 내가 왜 합격했는지 합격 비결을 알 수가 없다. 그냥 본인과 친구들 그리고 컨설턴트가 추측하고 포털에서 옮겨올 뿐이다. 당신이 알고 있던 합격자의 자소서가 합격자소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하는 이유다.

◇취준생이 봐야 할 것은 지원기업의 ‘인재상’과 ‘직무역량’

그렇다면 자소서 합격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 컨설턴트는 “지금 당장 여러분의 책상 위에 있는 합격 자소서부터 휴지통에 버려라”고 말했다. 자기소개서 잘 쓴 예를 더 이상 검색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그 이후 바로 지원기업의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그 기업이 하고 있는 비즈니스를 꼼꼼히 보고 정리하라고 조언했다. 지원하는 직무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고, 그 기업과 직무에서 애타게 찾고 있는 인재의 모습을 그린 인재상과 직무역량을 보고 키워드를 뽑아 종이에 적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채용팀에서 만들어 내는 ‘평가표’가 될 것이다. 자소서는 글의 유려함이 아닌, 바로 이 평가 항목에 몇 점으로 점수 매겨지는지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 취업준비생으로서 원하는 것이 ‘힐링’인지 ‘취업’인지를 냉정히 생각해야 한다. 정말 취업을 원한다면 지금 바로 채용팀장이 하듯 인재상과 직무역량을 바탕으로 평가표를 만들어보는 게 우선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경험사례를 하나하나 개발하면, 이것은 성공취업으로 이끄는 보물이 될 것이다. 김 컨설턴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조언이 식상하다면서 또 다른 ‘비법’을 다시 찾아 나서는 학생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취업을 하고 싶다면 이제 그만 ‘취준생 놀이’에서 당장 벗어나서 지금부터라도 ‘취업준비’를 하라. 그렇지 않으면 취업한 선배,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팁, 채용 경험이 없는 컨설턴트가 만들어 내는 각종 ‘카더라’에 의존한 취업 비법에 파묻혀 바다에 떠다니는 빈 병처럼 계속 흔들릴 것이다. 계속 제자리에서 헤매면서 합격의 기적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가 채용팀장으로서 힘줘 강조했다. 단언컨대 “합격 자소서는 없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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