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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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암살의 시작

4.

크라시피우스의 보고를 받은 테오도시우스는 내심 걱정하는 눈치였다. 크리사피우스는 눈치가 전광석화였다. 테오도시우스의 아버지같았던 현명한 섭정 안테미우스를 죽이기도 했던 처세를 가진 반성없는 욕망덩어리였다.

“아틸라의 측근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테오도시우스는 겁이 났다. 서로마 황궁 일에 말려들어 아틸라와 전쟁을 하게 될까 두려웠다.

“우리는 막대한 조공을 바치고 있는 형편이오. 만약 암살이 실패로 끝난다면 아틸라가 동로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은 뻔하오. 내 목숨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크리사피우스는 테오도시우스를 어린아이처럼 달랬다.

“한편 성공한다면...”

“성공하기만 한다면...”

테오도시우스는 사실, 겁이 많았다.

“꼭 성공할 겁니다. 에데코에게 이미 황금을 주어서 보냈습니다. 아틸라에게 동로마 제국 황제사절단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사절단들 그 누구도 암살계획을 몰라야 합니다.”

테오도시우스는 그제서야 솔깃해졌다.

“그럴 수 있겠소?”

크리사피우스는 테오도시우스의 얼굴에 바짝 다가갔다. 충성과 신의의 표시였다. 하지만 언제든 무너질 난간을 잡고 있는 충성과 신의였다.

“일단 사절단 대표로 막시마누스를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라면 아틸라도 신임할 것입니다.”

“음, 그는 탁월한 외교관이요. 그의 달변이라면...그는 대외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니 아틸라도 의심하지 않겠군."

테오도시우스는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우유부단함이 그의 황제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막시마누스도 몰라야 합니다.“

테오도시우스는 일어났다. 이미 암살계획은 시작을 지나 진행되고 있었다.

“그럼 알살자는?”

“암살자는 제가 이미 물색해 놓았습니다.”

테오도시우스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벌써 아틸라 암살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선물을 가져가도록 하시오.”

크리사피우스는 물러났다.

“우리는 모두 사위된 자들이 왕이된 부족들이오.”

왕 눌지는 조용히 애기했다. 술잔을 들이켰다. 그는 늘 말이 차분했다. 그림속의 남자처럼 늘 움직임이 실감나지 않았다.

“석씨든 박씨든 김씨든 모두 사위로서 마립간이 되었소. 내 오늘 그들의 작태를 보니 감히 오만했소. 마립간을 배출한 집안이라고 하지만, 도가 지나쳤소.”

치술공주는 조용하고 서늘한 얼굴 뒤에 펄펄 끓는 여인의 정념과 사내의 열망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는 왕 눌지를 지배하고 있는 여자였다. 낮과 밤을 모두 지배했다. 명멸의 지배자였다.

“앞으로 왕이 되기 위해 사위가 될 필요가 없소. 김씨 성골만이 마립간이 될 것이오. 내 반드시 이 업(業)을 이룰 것이오.”

“반드시 이룰것입니다. 항상 변함없이 말씀하시니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공주 황아를 하나 낳았으니, 왕께 드릴 큰 청은 없사옵니다. 그저 왕 곁에만..."

왕 눌지는 치술을 가까이 안았다. 치술공주는 포옥 안겼다. 낮게 낮게 왕의 몸을 파고들었다,.

“소문이 흉흉합니다.”

그녀의 목소리조차 포옥 안겼다. 파고들었다.

“무슨 소문이오?”

“저를 불쌍히 여기신 왕께서 저를 그저 색도(色道)로 위로하셨다는 소문입니다. 사실이옵니까? 저를 향한 아낌은 신기루이옵니까?”

왕 눌지는 어정쩡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치술공주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 그랬던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아끼고 있소. 내가 정사를 이리저리 꺼내어놓는 것도 결국 당신 앞이잖소? 당신은 아들이 없으니 내 맘이 편하오.”

치술을 눈썹을 부러 파르르 했다. 눈물이 이리저리 어리했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여전히 조용하고 서늘했다.

“전 아들을 낳지 않을 것입니다.”

“아들 욕심이 없다는 말씀이오?”

“왕의 길에 멀리 떨어지고 싶습니다. 권력에 다가서면 사랑을 잃게 됩니다.”

왕 눌지는 치술공주의 어리한 눈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생각해볼 만한 일이었다.

“마마. 누군가 모함하길 치술공주께서 박시와 석씨의 집안의 우두머리의 방문을 왕왕 받은 적이 있다 하옵니다.”

왕 눌지는 잠시 어지러웠지만, 곧 부드러운 안색으로 치술공주를 보았다.

“바라는 것이 있소?”

“묵호자라는 사람이 서역의 믿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하는데, 저는 그 믿음의 이야기를 한 번 듣고자 하옵니다.”

왕 눌지는 순간 추운 겨울의 눈보라처럼 싸늘해졌다.

동로마 사신 일행의 대대적인 사절단이 아틸라를 방문하러 왔다. 아틸라는 성대한 연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다. 막시마누스는 테오도시우스의 전언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회를 즐길 여유는 없었다. 그는 또 역사의 한 장(場)에 끼어들게 된 것이다. 호노리아 공주를 돌려보낸 것에 대항 변명과 사과였지만 지극히 외교적인 정치가 필요했다. 동로마 황궁에서의 연회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전부를 보여준다면 아틸라의 훈족의 연회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전부가 있었다. 동로마와 달리 오히려 아틸라는 신하들보다 더 초라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동로마 황궁에서 황제의 음식은 달랐다. 인상적이었다.

여자들 또한 자유롭고 분방한 냄새를 풍겼다. 정조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어보이는 이국의 여자들은 그야말로 남자들에게 낙원이었다. 아틸라가 부족을 정복할 때마다 합류된 여자들이었다. 아틸라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상의 땅을 정복하는 것이 곧 세상의 여자들을 정복하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막시마누스는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내야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아틸라에게 전할 말을 외워보고 있었다.

그때 아틸라가 등장했다. 그는 셋째 아들 에르낙과 동행했다. 그는 격의없이 자신의 측근들과 인사를 나누었지만 웃음은 전혀 없었다. 평생 웃어본 적이 없는 남자같았다.

“적의 목을 벨 때만 희미하게 스윽 웃는다고 합니다.”

누군가 조용히 떠들었다. 막시마누스는 그의 작은 체구와 고양이 눈빛을 가진 암팡진 얼굴에서 뿜어져나오는, 해명할 길이 없는, 역사를 움직이는 한 남자의 힘에 그만 외운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를 향해 달려가 그의 손을 덥석 잡고 싶을 정도였다. 그의 손을 잡고 울고싶을 정도였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