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개념의 방송수신기기 ‘TV패드’가 중국에서 확산되면서 우리 방송 콘텐츠가 불법 유통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최신 지상파 인기 드라마는 물론이고 예능과 애니메이션, 영화 등 방송과 영상 콘텐츠가 불법 유통의 표적이 되면서 한류 콘텐츠의 해외시장 창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29일 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TV패드 확산으로 한류 콘텐츠 불법유통 사례가 늘어나자 최근 방송 3사는 콘텐츠 저작권 침해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TV패드로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 콘텐츠와 영상물이 무차별하게 중국 등지에서 저작권 침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TV패드는 중국에서 제조한 일종의 인터넷 TV 셋톱박스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TV패드를 구입한 후 TV나 모니터 등 영상출력장치에 인터넷을 접속하면 특정 서버를 거쳐 세계 각국 방송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실시간방송 시청기능은 물론이고 녹화와 주문형비디오(VoD) 기능도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근접 문화권인 데다 한류 콘텐츠로 신시장을 개척하고 있던 터라 그 피해가 더욱 크다. TV패드 가격은 300달러(약 30만원) 안팎이다. 최근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호주, 미국 등지로 TV패드 보급이 확대되면서 콘텐츠 불법유통 가능성은 훨씬 커졌다.
KBS 관계자는 “2년여 전부터 중국산 TV패드가 유행했다”며 “지난해부터 TV패드 사용이 급격히 늘었고 한국 콘텐츠에 관심이 증가하면서 한류 콘텐츠 불법 소비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피해 규모를 따지면 천문학적 금액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백편의 콘텐츠가 TV패드로 유통된다”며 “한 편의 방송 콘텐츠가 수개월의 노력을 거쳐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제작에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피해액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TV패드로 유통되는 모든 콘텐츠가 방송사나 콘텐츠 제작자와 제휴관계 없이 서비스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합법적인 해외 콘텐츠 유통시장마저 붕괴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상파 방송 3사는 우리나라 저작권위원회, 중국 판권국 등과 협조해 저작권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현지 법체계가 달라 고전하고 있다. 기기의 불법성을 입증하거나 서버 단속을 의뢰해야 하지만 모두 쉽지 않다.
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TV패드 판매를 금지하려면 기기가 불법 콘텐츠 유통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하려면 상당히 긴 기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원하는 결과를 얻을지도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국내 지상파 방송 3사는 미국 법원에 TV패드 판매중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기각당한 바 있다. 방송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국 법원이 TV패드 판매 금지가 즉각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 만큼 긴급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해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지 기기 자체의 합법성을 판결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방송사의 차선책은 중국 정부에 TV패드 접속서버 차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서버가 중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호주 등지에 산재해 있어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나라마다 법·제도 적용이 다른 것도 TV패드 확산을 막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지상파 방송 3사와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와 협조해 소송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소송에 나선 방송사 관계자는 “불법 콘텐츠가 확산되면 모처럼 개화하고 있는 한류 콘텐츠를 제값 받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콘텐츠 창작 의지를 꺾을 수 있다”며 “까다롭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라도 소송을 강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