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시행 연기 요구는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이미 예상된 수순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이던 선진국도 글로벌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또 주요 기관들이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등 우리나라 경제에 저성장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배출권거래제 시행은 또 다른 부담이라는 인식도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녹색성장 정책 추진력이 상실돼 배출권거래제를 추진하려는 주체도, 이행할 당사자도 의지가 많이 꺾인 상태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법이 제정된 지난 2012년 당시에는 MB정부의 강력한 녹색성장 드라이브가 있었다. 국제 사회에서도 이미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다배출국인 미국과 중국도 온실가스감축에 적극 동참하겠다며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우리는 녹색성장 선도국임을 내세우며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이 아니었지만 자발적으로 개발도상국 최대치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겠다고 공표하고, 이행수단으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했다.
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법 제정 때부터 국가 산업경쟁력 저하 요인이라고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미국과 중국 등 온실가스 다(多)배출국가에서도 전면 도입하지 않은 강제 감축 정책을 상대적으로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우리나라가 먼저 도입하는 것은 ‘오버’라는 것이었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은 제품 생산원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에 치명적이라는 주장이다.
산업계는 배출권 거래제법 제정 당시에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반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수용했지만, 당장 내년 제도 시행을 앞두자 손실을 수용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현실에 봉착했다. 그래서 적어도 세계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감축 컨센서스를 도출할 2020년 신기후변화체제 수립에 맞춰 우리나라도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미뤄야 한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다.
배출권 거래제를 빨리 도입하면서 글로벌 배출권 거래 시장이나 관련 산업을 우리나라가 선점할 수 있다는 메리트도 불투명해졌다. 최근 유럽 배출권거래시장에서 배출권가격이 폭락해 관련 산업이 위축됐으며, 다른 국가에서는 제도 도입 움직임이 주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 주무 부처인 환경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한 차례 시행을 연기한데다 산업계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했기 때문에 법대로 내년부터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에서 후퇴가 없다. 산업계가 주장하는 핵심 사안인 배출전망치(BAU) 재산정에 대해서는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지 말자는 주장과 같다”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2009년 산정한 배출전망치 사용 타당성 검토 차원에서 지난해 한 차례 정부 부처 공동으로 재산정 한 후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번복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제도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산업계와 협의해 조정할 수 있지만 내년 시행하는 것과 제도의 기준인 배출전망치 재산정은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제 공은 사실상 청와대로 넘어갔다. 이미 배출권거래제법이 제정됐고, 시행 일정이 법에 명기된 만큼 일개 정부 부처에서는 법을 번복하는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에 달려있다는 관측이다.
경제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돼온 법 절차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일부 비판을 감수하면서 현실적인 경제 안정을 선택할 것인지 중요한 기로에 선 셈이다.
[표]배출권거래제 도입 경위 및 시행 계획
[자료:환경부]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