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우리 섬유산업이 근대 공업의 형태를 갖춘 것은 일제시대 미쓰이가 조선방직, 김성수 선생이 경성방직을 세우는 등 근대 면방직 공장이 출현하면서부터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 본토의 노동력 부족 등으로 한국으로 공장이 이전되면서 적지않은 방직시설을 갖게 됐다. 하지만 6·25 등 전쟁으로 관련 시설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전후 복구 기간 우리는 미국, 국제연합(UN) 등의 원조와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산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본격 추진되면서 종전 내수에 머물렀던 섬유산업은 수출산업으로 전환했다. 우리나라는 아크릴 스웨터 수출을 시작으로 해외 공급을 늘려갔다. 1968년부터는 폴리에스테르 등 화학섬유 생산이 본격화 돼 산업이 급성장했다.
1970년대 섬유산업은 빠르게 발전했다.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달하며 우리는 홍콩, 대만과 함께 섬유수출 빅3 국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말 상황은 악화됐다. 선진국들이 자국 섬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개도국으로부터의 수입 규제를 강화하면서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우리나라 임금·원자재가격·연료가격이 상승하며 국제경쟁력을 점차 잃게 됐다.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섬유공업 근대화 촉진법’을 제정했다. 생산설비 신·증설 허용 등 시설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인력양성과 통상활동 지원 등을 위해 근대화 기금을 설치·운영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화학공업 우선 지원과 임금 상승 등으로 섬유산업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1980년대 말에는 중·고가 제품만 생산하는 업종별·품목별 생산구조의 고도화가 촉진돼 선진국형 수출구조로 변환됐다.
1990년대까지 지속 어려움을 겪던 섬유산업은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ICT의 발전과 우수한 지리적 위치, 국가 인지도 상승,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 등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