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광고인 박웅현은 자신이 쓴 ‘책은 도끼다’에서 판화가 이철수의 ‘가을 사과’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도 사과를 많이 봤지만 뉴턴이나 이철수 같은 생각은 한번도 못해 봤습니다’.
자신의 짧은 통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싶었겠지만 예를 잘못 들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한 사람은 아이작 뉴턴이 유사 이래 처음이었으니까.
166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뉴턴은 갈릴레오, 케플러, 베이컨, 데카르트 등 위대한 선대 과학자의 업적을 연구했다. 1665년 런던에 창궐한 페스트로 휴교령이 떨어지자 뉴턴은 고향인 올즈소프로 돌아간다. 2년간의 귀향 생활은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세계 과학사의 흐름까지 바꿔 놓는다. 그의 평생업적이자 물리, 수학분야에 대혁명을 몰고 온 만유인력의 법칙, 운동법칙, 미적분학의 구상이 이 시기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1687년에는 이러한 내용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세상에 공개했다. 근대 과학사의 새지평을 연 이 책의 출판은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와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됐다. 핼리는 1682년 대혜성의 출현을 관측하고 1758년에 다시 나타날 것을 예언한 천문학자다. 우리가 핼리라고 부르는 혜성도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핼리는 당시 과학계의 미해결 난제로 남아있던 ‘행성 타원 운동의 수학적 증명’을 뉴턴에게 부탁했다. 천문학자 케플러는 행성의 타원운동을 발견했지만 수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뉴턴은 헨리와의 만남 이후, 수개월 만에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할 경우 케플러의 법칙이 성립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물체의 궤도 운동에 관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핼리는 이때부터 뉴턴과 깊은 교류를 나누며 그의 발견을 책으로 남길 것을 간청했고 이는 곧 프린키피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총 3권으로 이뤄진 프린키피아 1권은 운동법칙(제1법칙 관성의 법칙,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F=ma) 제3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힘을 받는 물체의 운동 궤적을 계산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2권에서는 유체 속에서 운동하는 물체는 유체의 저항 때문에 타원 모양을 그리며 운동할 수 없음을 증명했고 3권은 뉴턴의 대표 업적 만유인력의 유도와 증명을 담았다.
사족을 달자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영감을 받았다는 뉴턴의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두고 논란이 따른다. 진위 여부를 떠나 뉴턴은 밤하늘의 행성을 관찰하며 두 물체 사이에는 서로를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직관으로 알아차린 듯하다. 달이 직선운동이 아니라 지구를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려면 지구와 달 사이에 인력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어 행성에 작용하는 힘이 지구상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같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면서 물체 사이에 만유인력이 작용한다고 확신했다. 케플러의 법칙과 자신이 발견한 운동법칙으로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의 중력은 각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의 떨어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만유인력 공식 유도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만유인력 법칙은 이때까지 ‘신의 영역’으로 불린 행성계의 운동을 지상의 물체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최초의 ‘통일 공식’이다. 케플러와 갈릴레이가 각각 천체와 지상물체의 운동을 설명했지만 두 운동은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지금도 읽기 어려운 책으로 손꼽히는 프린키피아는 당시에도 판매부수가 많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린키피아는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안할 때까지 수많은 중력현상을 기술하는 가장 정확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지금도 뉴턴의 공식으로 일상생활에서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무리가 없다.
뉴턴의 더욱 큰 업적은 과학계에 자리 잡고 있던 부조리와 비합리적 요소를 제거했다는데 있다. 그는 가설이나 독단을 철저히 배척했다. 합리적이고 수학적증명만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입증했다. 물질의 운동을 역학과 수학으로 완전하게 설명함으로써 현대과학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18세기 많은 과학자가 뉴턴의 성공에 자극받았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수식으로 표현하는데 주력해 성과를 냈다.
철학자, 문인도 형이상학적, 독단적 주제를 버리고 합리적, 경험적 사고를 강조하는 등 18세기계몽주의 탄생의 단초도 제공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