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의 산업에세이] 공무원도 영혼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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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경험했다. 문민정부에서 MB정부까지 개혁 차원에서 그랬고, 그 이전의 정부에서도 서정쇄신이란 명분으로 수차례 있었다. ‘무소신의 병폐’는 이토록 습관성 유산으로 고착됐고 새로운 정부가 끌어안아야 할 숙명으로까지 여겨졌다.

흔히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말한다. 정치색이 강한 윗사람 눈치를 보고 국회와 정부 여당의 분위기를 살핀다는 점에서 일부 동감한다. 코드 인사 분위기가 판을 치면 더욱 그렇다. 소신을 가진 전문가가 실용인사가 아닌 ‘잘못 끼운 단추’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다면 소신은 자취를 감춘다. 수십년 공무원 생활 이후 고위공직자로 전문 역량을 펼치는 이에게 느닷없이 ‘코드’를 들이대며 굴비 엮듯 묶으면 어느 누구라도 ‘소신의 꼬리’를 슬쩍 감출 수밖에 없다.

“고객이 만족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정부부처 한 고위공직자는 국민을 ‘고객’으로 표현했다.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소비자를 상대로 정성을 다해 불렀던 고객이라는 단어를 국민에게 사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이 국민을 민원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상반되는 것이어서 깜짝 놀랐다.

그는 “섬김을 다해…”라는 말도 여러 번 반복했다. 공직자와 고객(민원인)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다. 물 없이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고객 없이 공직자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필연의 관계를 이해 못하는 공직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달치 주택 월세를 정부가 돌려준다는 창조경제 시대에 영혼 없는 정책 행태가 등장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풍력발전소가 조성될 수 있도록 규제를 풀라고 특별지시 했다.

그런데 관련 시장과 기업은 기대했지만 실망의 부메랑은 여지없이 돌아왔다. 산림청과 환경부는 산림훼손이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을 고수했다. 대통령 앞에서는 “예”라고 해놓고 돌아서서 “노”라는 입장이다. 정부 인허가 규제조항이 완화되지 못할 경우 풍력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해마다 반복되는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도 무소신의 병폐다. 비현실적인 공급의무량 산정을 두고 규제일변도의 정책이라며 시장은 울부짖었지만 관련부처는 올해 들어서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화평법·화관법도 상황은 비슷하다. 법을 만들 때 모호하게 해놓고 시행령을 통해 산업과 시장에 양보한다는 아량을 베풀었다. 고무줄 규제, 엿장수 규제와 다름이 없다.

선심정책을 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SW산업진흥법은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 직원들이 영혼을 갖고 추진한 정책이다. 수출과 산업경쟁력을 위해 높이 날아 멀리 보려 했던 대표적인 소신정책이다. 일부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상위 기업들의 점유율은 낮아지고 중견·중소 IT서비스 기업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공공정보화 사업 수주율도 이들이 80%를 이뤘다.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드는 견문발검의 누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직에 있는 한 소명의식은 필수다. 단임제 정부가 몇 번 바뀌면서 ‘한번 차를 잘못 타면 밀려 난다’는 흐릿한 소명의식은 배척해야 할 최대 적이다. 과거 공직 선배들이 권력의 위협과 뒷조사를 당하면서도 예산을 지켜냈고 대통령과 여당의 무한 압력도 타당하지 않으면 아니라고 말했던 뚝심을 곱씹어야 한다. 공직자는 어느 정권의 공무원이 아닌 대한민국의 공무원이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고객으로 섬긴다.


김동석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ds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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