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다. 입법기관 국회 얘기다. `놀고먹는 국회`라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 19대 국회가 2012년 5월 개회해 얼추 전체 회기의 절반이 흘렀다. 하지만 법안 처리를 보면 한숨뿐이다. 지난해까지 법안 8533건이 발의돼 880건이 처리됐다. 간신히 10%를 넘는 수준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학 관련 법안을 들여다보면 한숨이 아니라 숨이 턱 막힌다. 주지하다시피 이들 법안은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주춧돌이다. 총 330여건이 발의됐지만 이 중 국회 본회의까지 거친 법안은 단 8건이다. 처리율이 고작 2.4%다. 19대 전체와 비교해도 5분의 1에 불과하다. 300건이 넘는 법안이 국회통과는커녕 `심의`조차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성과라면 여야가 합의해 통과된 `정보통신기술 특별진흥법` 정도다.
지난해 정기국회는 더 참담했다. 4개월 기간에 관련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단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명분도 없다. 국정 주도권을 의식한 정쟁이 원인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두고 여야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법안 대부분이 줄줄이 뒤로 밀렸다. 덕분에 미방위는 처리율 `제로`로, 16개 상임위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개점휴업에 빗대 `식물 미방위`라는 오명을 남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창조경제와 민생법안은 국회 캐비닛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 당장 처리해야 할 법안이 한둘이 아닌데도 그렇다. ICT 쪽에서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법` `클라우드 컴퓨터산업 진흥법` `데이터베이스산업 진흥법` 등이 발목이 잡혔다. 미디어 공정경쟁과 개인정보 문제로 논란이 치열했던 `유료방송 합산규제법`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도 심의조차 못했다.
창조경제를 위한 큰 축인 과학기술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연구개발 특구 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우주개발 진흥법 개정안` 등 굵직한 과학기술 분야 법안 대부분이 올 스톱 상태다. 이 가운데 이미 10년 전에 제정한 과학기술기본법이나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를 이룬 연구개발 특별법 등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기약 없이 대기 중이다.
새해 벽두, 별반 나아질 기미가 없다. 여야는 겉으로 선진 정치를 부르짖지만 정작 법안 처리와 관련해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2월 국회에서 미뤄지면 3월 지방선거 체제 돌입, 6월 지방선거, 7월 상임위 재편 등 법안 처리까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자칫 19대 회기까지 넘긴다면 발의된 법안 모두가 무효화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국회는 곧 법이다. 법을 빼 놓고 국회의 존재 의미를 말할 수 없다. 대통령을 견제하고 정부를 구성하는 등 다른 역할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역시 국민을 위해 법을 제정하고 수정하는 일이다. 가뜩이나 19대 국회는 3년차지만 국민의 불신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 최근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무려 91.1%가 국회 역할 수행과 관련해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역할을 망각한 국회, 과연 안녕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 19대 의원님들, 해도 너무한다.
경제과학벤처부장=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