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는다]히든싱어가 진짜로 숨긴것은?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가수 임창정 히트곡 `소주한잔`이 절정으로 치닫자 관객은 흥분에 휩싸인다. 용접공이라고 자신을 밝힌 일반인의 입에서는 분명 임창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히든싱어`라는 모창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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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된 모창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모창능력자의 재주는 놀라웠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노래를 부를 때는 원곡과 모창의 구분이 힘들 정도였으니까. 흘러간 유행가라고 생각한 노래가 음원차트에 다시 등장할 정도로 반응도 뜨거웠다. 모창자가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소리의 과학적 원리를 본능적으로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사람 목소리의 특징을 결정하는 것은 고유 주파수와 음색, 억양이다. 이 세 가지 요소에서 강점은 부각시키고 약점을 감출 때 모창은 완성된다.

고유 주파수는 말 그대로 어떤 소리가 갖고 있는 본래 주파수를 말한다. 인간이 소리를 듣는 것은 공기 압력의 변화가 귀를 자극해 청각신호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정 범위안의 압력 변화와 주파수만을 소리로 느낄 수 있다.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유 파장을 갖고 저마다 다른 색을 내는 가시광선만 보는 것처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음도 특정 주파수대에 한정된다. 동일한 음은 고유주파수도 같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똑같은 `도`음을 내면 두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의 고유주파수는 같다.

음색은 특정 소리가 갖고 있는 파동의 모양에 따라 결정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동일한 고유주파수를 갖고 있는 `도`음을 내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두 악기에서 나오는 음파의 주기 모양(음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음을 내도 성대 구조가 다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가 내는 소리가 다른 것과 같다. 후두에서 고유주파수의 음을 내도 성대라는 일종의 관악기를 통과하면서 파동의 모양은 바뀐다. 사족을 달면 목소리로 사람의 나이, 외형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음색분석을 통해 성대구조 등을 거꾸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양은 단어, 또는 문장을 읽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른 것은 억양 때문이다. 모창 가수의 실력은 소리의 이 세 가지 요소를 얼마나 이해하고 유사하게 따라할 수 있느냐가 결정한다. 음색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기본주파수를 내는 능력과 억양은 노력으로 비슷해 질 수 있다. 만약 유명가수와 성대구조가 닮아 유사한 음색을 보유한 사람이 정확한 음정으로 억양까지 따라 한다면 구분하기 힘든 모창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계의 힘을 빌려 원곡과 모창을 분석하면 그 물리적 특성은 유사하다고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배명진 숭실대학교 정보통신전자공학부 교수는 “사람이 들었을 때 비슷하다고 느끼는 모창곡을 디지털정보로 변환해 분석하면 원곡의 물리적 특성과 차이가 크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비슷하다고 느낄까. 역설적으로 사람의 귀가 예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모창자가 원곡을 부른 가수의 발음, 바이브레이션 등 특징을 잘 따라하면 귀는 그 부분을 빨리 포착하고 집중한다.

배 교수는 “소리에는 다양한 물리적 특징이 있지만 이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이 유사하면 사람의 귀는 이를 비슷하다고 느끼게 된다”며 “음색이 조금 달라도 특징을 잘 따라하면 비슷하다고 느끼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보면 모창은 음색차이를 특징과 기교로 감추는 고도의 속임수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발음이나 창법이 특이할수록 모창이 쉽다고 할 수도 있다. 김민종, 김건모처럼 창법의 개성이 뚜렷한 가수의 모창자가 많은 이유기도 하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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