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가를 떠도는 `판교 괴담`
요즘 소재부품가에서는 `판교의 저주`란 말이 돌고 있습니다. 멀쩡하던 중견 기업도 판교에 사옥을 지어 나간 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거나 실적이 추락한다는 괴담이지요. 혹자들은 거기 터가 안 좋은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그러나 판교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판교로 사옥을 옮긴 이후에도 꾸준한 실적을 내는 회사가 훨씬 많습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거만해진 경영자, 사옥에 현금을 투자하면서 회사 유동성이 부족해진 게 문제겠지요. 벤처에서 시작한 회사가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다가 중견기업 문턱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례를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발주가 들어와도 힘든 장비업계, 납기 맞추느라 진땀.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는 종류마다 다를 수 있지만 평균 납기는 6~9개월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설비 만큼은 대량 생산을 할 수 없는데다 고객 요구 사항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맞춤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가격 협상 과정에서 기술 규격을 웬만큼 정한다고 해도 제작하고 테스트하는 데 6개월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납기가 과거보다 1~2달가량 줄었습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업체들이 과거처럼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는 탓에 이리저리 재다 더 이상 투자를 늦출 수 없을 때 결정하는 통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장비 업계의 한숨은 늘어갑니다. 왜냐구요. 투자가 없을 땐 없는대로 죽을 맛이더니 주문이 들어와도 납기를 맞추려고 밤샘·야근은 기본으로 합니다. 1, 2차 협력사할 것 없이 납기 막바지에는 담당자들이 병원 실려가기 일쑤라고요. 사업이 잘 돼도 힘드니, 호시절은 언제야 오는 걸까요.
○…부하 직원은 노예가 아니라구요.
제조업은 힘들다.` 다들 동의할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답니다. A사는 막내 직원이 B 임원의 운전기사 노릇을 합니다. 경기도에 사는 직원은 주말 새벽부터 서울 강남권에 사는 B씨의 집에 들릅니다. B씨의 차를 운전해 골프장에 모시고 간 다음 접대 골프를 치고 다시 B씨 집에 갔다가 경기도 집으로 돌아갑니다. C사 D 부사장은 직원들이 그렇게 못마땅하답니다. 자신은 회사 사무실에 야전 침대를 놓고 새우잠을 자면서 일을 했는데 부하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불만입니다. 그 눈치 때문에 야전 침대를 물려받은 직원은 평일에는 집에도 못 들어간다고요. 열심히 일하는 것도, 회사가 성장하는 것도 좋지만 인간적인 삶까지 포기하게 만들면 안 되겠죠. 직원은 노예가 아니랍니다.
○…소재부품가 CEO님들, 기업설명회에서 `외계어`는 그만!
소재부품가 CEO들은 대부분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제품을 설명할 때에도 전문 용어를 종종 쓰곤 하지요. 직원들도 자기 분야에 관한 이야기니 그런 용어가 생소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고요. 문제는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전문 용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에게 그런 용어로 제품 설명을 하면 그건 외계어가 되기 십상이겠지요. E기업이 최근 열었던 기업 설명회가 딱 그런 경우인데요. 증권가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은 설명회를 시작하자마자 하나 둘씩 최면에 걸린 표정을 짓기 시작했답니다. E사 CEO조차 조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곤욕을 치렀다죠. 소재부품 혁신 없이는 제조업의 혁신도 없는 시대, 이제는 소재부품가도 소통 스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소재부품가 뒷이야기는 소재부품가 인사들의 현황부터 화제가 되는 사건의 배경까지 속속들이 알려드립니다. 매주 월요일 소재부품면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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