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소재는 우리 맛·산업의 뿌리다

세계적인 한류 열풍을 타고 글로벌 푸드로 자리매김한 비빔밥은 전주비빔밥을 최고로 친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최고 수준의 다양한 음식 재료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음식 맛도 그만큼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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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세계를 우리나라 산업현장에 적용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서운한 얘기지만 국가 차원의 산업화와 R&D 역사가 선진국에 비해 짧은 이유로 아직까지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소재를 그다지 많이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최첨단 항공우주산업이나 IT, 자동차산업에 쓰이는 고부가가치 핵심소재도 수입에 의존한다. 스마트폰에 쓰이는 고기능성 필름이나 자동차 연비를 높이는 가볍고 강한 탄소섬유 같은 소재는 극소수 업체가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아무나 쉽게 흉내낼 수 없는 기술경쟁력을 갖춘 때문이다.

독일과 미국, 일본 등에서 비싼 돈을 들여 사오는 이런 해외소재는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 산업계가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실속 없는 장사를 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해법은 단 한 가지다. 연구개발을 통해 최고 소재를 만드는 일이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경영시스템을 연구개발 중심으로 급속 전환하고 있다. 연구개발 인력과 R&D 투자액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시장경쟁을 통해 R&D의 중요성을 학습한 결과다.

재미있는 사실도 있다. 이렇게 연구개발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시기에 주목받는 분야가 바로 `화학`라는 것이다.

화학은 구리나 납으로 금과 은을 만들려고 했던 연금술에서 비롯됐다. 쉽게 말해 새로운 물질 즉, 신소재를 만드는 분야다. 돈 되는 미래 분야로 각광받는 수소연료전지차나 태양전지, 신약개발, 환경복원 등에 꼭 필요한 명품소재가 모두 화학기술로 만들어진다.

산학연에서 화학 분야를 전공한 우수 인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도 소재를 만드는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사회 전반에 이런 분위기와 산학연 협력프로그램이 정착돼 있다. 이들이 오늘날 소재강국으로 군림하는 이유다.

선진국 글로벌 화학기업들은 요즘 우리나라에 연구소를 세우고 한국 산업계 입맛에 맞는 소재를 발굴하고 있다. 세계 최대 화학회사인 바스프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전자소재 R&D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머크는 독일 본사 이외에 최초로 평택에 OLED 연구소를 설립했다.

우리나라도 최근 소재개발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강력한 육성 의지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92조원 규모의 국가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첨단소재 기술을 중점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다. 지난해 소재부품 분야는 수출과 무역흑자가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동차, IT, 조선, 신재생에너지 분야 국가경쟁력을 높여줄 혁신적인 소재 개발이 국가적 과제가 됐다.

한국인의 성격을 `냄비`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묵묵한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고추장, 된장, 김치 등이 일상생활을 통해 천천히 익혀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체득해 온 것이다.

연구개발에서도 꿈을 이루고자 하는 절실함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긴 호흡이다. 맛있는 음식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숙성이 필요하듯 실속이 넘치는 소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호시우보(虎視牛步)`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사람이 유일한 자산인 대한민국이 창의적 연구개발을 통해 첨단소재의 글로벌 성지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장 kjaehyun@kr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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