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맥주는 대동강 맥주(북한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일갈한 이코노미스트 보도로 시작된 맥주 맛 논란이 국내 주류업계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월 기획재정부는 맥주 시장 경쟁촉진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소규모 제조맥주(일명 `하우스맥주`) 활성화가 목적이다. 내년부터는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국내산 `하우스맥주`를 살 수 있을 전망이다. 개정안은 외부 유통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맥주 제조공장의 시설기준을 완하고 과세 대상이 되는 과세표준도 낮췄다.
맥주제조장의 시설기준은 현행법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졌다. 전발효조(발효시설)는 시설기준이 현행 50㎘ 이상에서 25㎘ 이상으로 완화되고, 후발효조(저장시설)는 현행 10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낮아진다. 이 정도라면 집에서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홈브루(homebrew)` 수준은 아니지만, 다양한 마이크로브루어리(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활성화를 기대해 볼만하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을 중심으로 홈브루, 마이크로브루어리 문화가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맥주의 종류는 와인만큼이나 다양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태원의 유명 브루펍 맥파이의 공동 대표인 제이슨도 홈브루에서 맥주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전통주 전문 교육기관인 수수보리아카데미 등이 최근 맥주 만들기 전문강좌 등을 개설하며 홈브루 문화가 인기를 시작했다.
실제로 집에서 자기만의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취미생활 수준의 홈브루에서 출발해 전문설비를 갖추고 맥주를 파는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집에서 맥주를 만들 계획이라면 인터넷 전문쇼핑몰이나 이태원 등지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약 10~20만원 선에서 이른바 `키트`로 불리는 홈브루 장비 및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기본적 장비로는 맥즙을 끓일 커다란 냄비와 발효통, 외부 공기를 막아주는 공기차단기(에어락), 비중계, 실린더 등만 갖춘다면 된다. 물론 주재료가 되는 몰트와 효모, 만들 맥주를 따로 담을 맥주병(플라스틱 페트 등)도 준비해야 한다.
이렇듯 맥주를 만드는 방법은 기구만 잘 갖추면 일반 가정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맥주의 주원료 중 하나인 몰트(엿기름)를 당화시키고, 맥주 특유의 향을 만들기 위해 홉을 넣고 다시 끓인다. 끊인 액을 식히고 효모를 투입하면, 효모는 당화된 액의 당분을 알코올로 바꿔준다. 발효를 마친 액에 소량의 당분을 추가하면 남은 효모가 그 당분을 먹고 탄산가수를 생성하게 된다. 여기서 시중에 나온 맥주원액캔을 이용하면 까다로운 당화 및 홉 투입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진정한 맥주 만들기는 당화 과정과 홉을 넣는 데 있다.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의 맛과 향이 다른 것만큼이나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통곡물을 당화시켜 얻은 맥주와 가루로 분쇄된 곡물 원료, 캔으로 나온 맥주원액은 차이가 크다. 곡물에서 당분을 추출하는 당화 과정은 63~70도 사이 정도에서 이뤄진다.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 진행하면 당화는 빨리 이뤄지지만, 효소가 불활성화해 잃어버리는 것이 많아진다.
특히 싹튼 보리를 말하는 몰트를 당화할 때는 온도를 달리 해주어야 하고, 이에 맞춰 홉을 넣는 시간도 달라진다. 보리가 싹이 트면 씨앗 내에서 효소가 활성화돼 내부의 전분, 단백질 등을 분해하고 보리는 이 작용을 통해 영양원을 확보해 잎과 줄기를 만든다. 단백질 분해 효소와 당화 효소제는 서로 활성화되는 온도가 다르다.
이 까다롭고 번거로운 당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맥주가 조리과학이자 발효과학의 예술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반복되는 살균과 세척이다.
홈브루, 마이크로브루어리 문화가 확산되면서 해외에서는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잡지도 나오고 있다. 또 집에서 유명 맥주를 흉내 내어 만들어보거나 나만의 독특한 맥주 맛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제(클론)레시피`도 인터넷에서 검색만으로도 구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맛과 향을 얻기 위해 다양한 홉을 가지고 넣어보는 실험을 감행해볼 수도 있다. 맥주의 맛과 향을 사실상 결정하는 홉을 색다르게 조합하는 것부터 커피, 장미, 토마토 등 맛과 향을 새롭게 낼 수 있는 재료라면 상상 가능한 무엇이든 도전해 볼 수 있다.
사실 한국 맥주 맛의 논란은 다양성의 부족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제 마트에만 가도 100여종이 넘는 수입맥주가 넘쳐나지만, 그동안 한국맥주의 맛은 가볍고 톡 쏘는 맛을 내는 라거 맥주에 한정됐던 것이 사실이다. 맥주 맛의 논란은 한국맥주 시장에도 에일, IPA 등 다양한 종료의 맥주를 내놓게 만들었다. 제조업체들은 보다 새롭고 독특한 맛을 내게 노력하게 됐다. 그리고 이는 맥주업자에만 한정되지 않고, 일반인들도 스스로 원하는 맛의 맥주를 만들게 했다.
맥주를 집에서 만드는 것은 단순히 원하는 맛을 찾는 데 있지 않다. 스스로 자신만의 맛과 향을 `디자인`하면서 과학자가 될 수도 있고, 요리사가 될 수도 있고, 예술가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시장과 기술을 창조하려는 노력들은 이 같은 작은 열정과 도전에서 출발한다. 맥주가 우리 고유의 술은 아니지만, 한국 땅에서 나고 자라는 보리로 만들거나(아쉽게도 지금은 제주맥주 등 일부에서만 이뤄진다) 한국인이 만들어낸 새로운 창조적 레시피로 만들어진다면, 그게 새로운 전통의 출발이 될 수 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