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UHD' 대만의 압승, 한국의 승부수는?

대중화 바람 탄 UHD, 한국의 승부수는

2013년 초고선명(UHD) LCD 패널 시장 성적표는 대만의 압승이었다. UHD 패널이 프리미엄 시장부터 형성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디스플레이 시장이 위축되고 아직 변변한 콘텐츠도 없는 상황이지만, UHD 패널 시장만큼은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다. 분기마다 두 배씩 커지는 것은 기본이다. 특이한 점은 UHD 제품이 수천만원대의 프리미엄 시장이 아니라 풀HD TV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중저가 시장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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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주도적으로 UHD 패널을 만들고, 중국 TV 제조사가 강력하게 밀어부쳤다. 이들 협공에 84·85인치 등 대화면 프리미엄 TV 시장만 바라봤던 국내 업체들은 선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국내 업체들도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년 초에는 국내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도 중간가격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생산능력 면에서 대만보다 앞선 국내 업체들은 품질이 더 뛰어나면서 가격 경쟁력도 있는 제품을 선보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시장이 제대로 열리기도 전에 대중화 바람부터 탄 UHD 시장이 내년에는 어떻게 흘러갈 지 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0~50인치대, 60㎐ 미들급 대만 제품이 시장을 개화시켰다

올해 초 CES에서 중국 TV 제조사들도 65인치와 55인치 UHD TV를 전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화면이 어둡고 조악해 보이는 제품이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이들 제품에 코웃음을 치는 분위기였다. UHD라 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화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화질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이들 제품은 픽셀 수만 많을뿐 밝기나 화면재생 빈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 육안으로도 구분될 정도였다.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고 봤지만, 중국 시장은 예상과 달랐다. 올해 UHD TV 판매량은 1500만대 가량이었는데 그 중 3분의 2는 중국 시장 수요가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중저가 패널이 중국 UHD TV 시장을 뒷받침했다. 대만산 패널과 중국 TV 제조사들의 프로모션이 잘 맞아 떨어졌다.

방송은 커녕 아직 이렇다할 콘텐츠조차 없는 UHD TV 시장은 철저하게 공급자가 주도해 시장을 만든 형태다. 공급자 주도 시장의 핵심은 가격 경쟁력이라는 점에서 대만과 중국의 합작은 소비자들에게 거부감 없는 가격 수준의 UHD TV를 제공했다.

가격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대만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이 택한 전략은 사양 낮추기다. 화소수는 3840×2160으로 UHD 사양을 맞추고 있으나, 그 외 화질을 구성하는 성능들은 턱없이 낮다. 또 여러 부품들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가격을 최대한 끌어 내렸다.

60㎐대의 저가 제품을 내놓은 대만 이노룩스의 올해 UHD 패널 출하량은 독보적이다. 시장조사업체 NPD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8만7000대에 불과했던 이노룩스의 TV용 UHD 패널 출하량은 2분기 16만1000대로 두배가 늘었다. 시장 반응이 좋아지자 3분기에는 무려 4배가 넘는 80만대를 기록했으며, 4분기에는 119만6000대로 전망된다. 또 다른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는 올해 초 이노룩스의 UHD 출하량을 150만대로 예상했지만 벌써 200만대를 훌쩍 넘겼다.

이 같은 성공에 대만 AUO도 뒤늦게 따라가고 있다. 내년에는 60㎐ UHD 패널을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셰 NPD디스플레이서치 부사장은 “중국 양판점에 가보면 UHD 패널들을 위주로 전시를 해 놓고 엄청난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며 “이노룩스의 공격적인 전략에 의해 내년에는 UHD 패널 출하량이 30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도 중저가 시장 가세

국내 업계에서는 UHD 시장 초반 중저가 제품을 무시했던 기세는 사라지고 반성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모두 내년에는 범용 UHD 패널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대형 위주의 프리미엄 제품과 중형 크기의 범용 제품으로 나눠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프리미엄제품은 240㎐ 고속 구동, 4K·8K 해상도의 65~110인치 곡면 제품을 주력으로 할 것”이라며 “범용 제품은 40~55인치로 그린 테크놀로지와 내로 베젤 제품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도 수차례에 걸쳐 내년 초 범용 UHD 패널을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120㎐를 유지해 화면의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여러 사양들을 조정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UHD 전략 실패는 한국 업체들에게 뼈아픈 교훈으로 작용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시장이 포화에 다다른 상태에서 종전처럼 프리미엄 전략만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국내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은 내년 TV뿐만 아니라 중소형 제품 분야에서도 보급형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올해 UHD 시장을 대만 업체들에게 내주기는 했지만 국내 업체들은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무엇보다 생산 능력이 세계 최대다. 대만보다 월등히 많은 8.5세대 LCD 라인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대만 업체들은 6세대와 7.5세대 라인을 가동 중이지만 한국은 8.5세대와 7.5세대 대면적 LCD 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모두 55인치와 65인치는 8.5세대 라인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는 84인치를 7.5세대에서, 삼성디스플레이는 8.5세대 LCD 라인에서 각각 양산 중이다.

또 중국 현지에서 생산 체제를 갖추는 것도 강점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미 중국 쑤저우 LCD 라인 가동에 착수했으며, LG디스플레이는 내년 하반기 중국 공장을 가동한다. 관세 영향을 받지 않고 중국 TV 업체들에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UHD 전망은?

현재 UHD 시장 성장 곡선은 가파르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아무리 저가 제품이 나온다고 해도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UHD TV는 사실상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3차원(3D) TV 시장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어느 시점에서는 정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패널 업계는 UHD 시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미 2억대가 넘어 정점에 다다른 TV 시장을 움직일 호재라고 판단하고 있다. 다행히 유료 방송 시장을 중심으로 UHD 방송을 준비 중인 것도 고무적이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부사장은 최근 기업설명회에서 “풀HD TV가 보급된 것도 인프라가 다 갖춰져서 보급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되느냐다”고 설명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