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57>격전, IMT2000(4)

“따르릉, 따르릉!”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긴 2000년 12월 15일 새벽 5시경. 세찬 영하의 칼바람이 창문을 흔들며 지나갔다.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17대 국회의원·ICU 총장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 자택 전화벨이 적막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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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과 심사위원단이 2000년 12월 15일 정통부 대회의장에서 IMT2000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여보세요.”

안 장관이 수화기를 들자 석호익 정통부 정보통신지원국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KT 부회장 역임, 현 통일IT포럼 회장·ETRI 초빙연구원)의 빠른 말소리가 들렸다.

“장관님, 심사결과를 종합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석 국장은 충남 천안 정보통신교육원에서 진행 중인 IMT2000 사업자 심사장에서 밤샘작업을 했다. 석 국장은 사업자 선정결과가 나오자 안 장관에게 전화로 보고한 것이다.

“수고했습니다. 장관실에서 심사결과를 보고하세요.”

“알겠습니다. 즉시 서울로 출발하겠습니다.”

석 국장은 이기주 통신기획과장(방통위 기획조정실장 역임, 현 한국인터넷진흥원장)과 최종 심사결과 서류를 챙겨 곧바로 서울로 출발했다. 안 장관도 정통부로 출근했다.

그날 아침 7시 30분경.

석 국장과 이 과장은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정통부 후문 지하주차장을 거쳐 장관실로 올라갔다. 기자들이 정통부 입구에 진을 치고 있었으나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안 장관은 석 국장과 이 과장으로부터 최종 사업자 선정결과를 보고받았다.

안 장관의 증언.

“당시 청와대나 국정원 등에서 사업자 선정결과를 궁금해 했습니다. `어느 법인이 될 것 같으냐`고 물으면 `나도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그 순간 즉시 결과를 통보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청와대에도 10시께 보고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교육원 독방에서 각자 사업계획서를 심사했고 정통부 지원반이 이들과 행동을 같이했다. 석호익 국장의 말.

“14일 자정 무렵 항목별 점수가 나왔지만 최종 종합 집계는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칫하면 심사결과가 외부로 새나갈까 염려가 돼서였습니다.”

정통부는 오전 9시 30분께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위원장 곽수일 서울대 교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보고했다. 오전 10시 석 국장이 발표장에 먼저 들어가 심사결과와 심사위원 명단, 심사위원별 점수 등 3건의 자료를 배포했다.

발표장인 대회의장은 몰려든 취재진으로 초만원이었다. 외신과 TV 중계팀 등 취재진만 200여명에 달했다. 정통부는 업계 관계자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다.

오전 10시 30분.

안 장관이 심사결과를 공식발표했다. 석호익 국장을 비롯해 심사위원인 이태희 국민대 교수, 강영무 동아대 교수, 곽경섭 인하대 교수, 문송천 KAIST 교수, 김춘성 삼경회계법인 공인회계사, 문성태 신우회계법인 공인회계사 등 8명이 배석했다. 이들은 발표시간에 맞춰 천안에서 차량 편으로 정통부에 도착했다.

안 장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IMT2000 사업자 선정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비동기식 사업자로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이 선정됐습니다. 비동기식에 신청한 LG글로콤과 동기식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한국IMT2000은 탈락했습니다.”

발표는 짧았다. 1년 6개월여를 끌어온 IMT2000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선정업체는 환호했고 탈락업체는 좌절했다.

심사결과 비동기식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SK IMT와 한국통신 IMT가 총점 84.018점과 81.860점으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3위를 차지한 LG글로콤은 총점 80.880점을 얻어 탈락의 쓴잔을 들어야 했다.

동기식에 단독으로 신청한 한국IMT2000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3개 심사 사항 모두 100점 만점 기준으로 60점 미만이었다. 총점도 70점 미만인 56.412점을 얻었다.

심사항목별로는 역무제공 계획 타당성과 설비규모 적정성(35점 만점)에서 SK가 26.566점으로 가장 높았고 한국통신 26.103점, LG글로콤 26.482점, 한국IMT2000 19.336점 순이었다.

재정능력과 주주 구성 적정성(30점 만점)에서는 역시 SK가 24.719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한국통신이 23.807점, LG가 23.754점, 한국IMT2000이 17.814점을 각각 받았다.

기술개발 실적·계획과 기술적 능력(35점 만점)에서도 SK가 30.733점, 한국통신이 29.950점, LG가 28.644점을 받았고 한국IMT2000은 17.262점에 그쳤다.

정보통신부는 선정된 허가대상 법인에 자본금 납입, 법인설립 등기, 일시출연금 납입 등을 이행케 한 뒤, 필요 서류를 제출하면 허가서를 교부하고 허가조건은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통부는 또 IMT2000 동기식 사업자는 소비자 편익증진, 사업자 간 공정경쟁 확보, 관련 산업 활성화 등을 위해 다음해 1월 말 허가신청을 접수해 2월 심사, 평가를 완료해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안 장관은 “이번 심사는 심사위원 선정부터 최대한 공정성을 기해 사업자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석 국장과 심사위원들의 보충설명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 한 시간여 진행됐다.

안 장관을 비롯한 심사위원과 기자들의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 장관=2000년도 하반기 기간통신 사업자 허가신청 요령 및 신청을 고지하고 2000년 10월 25일부터 30일까지 신청을 받았다. 선정을 위해서 심사위원을 선정해 자격심사, 개량심사, 비계량 평가심사별로 의뢰했다. 심사결과를 접수해서 심의를 거쳐 발표하게 됐다. 비동기 신청 3개 법인 중 고득점 순으로 가칭 SK IMT, 한국통신 IMT를 허가 대상 법인으로 선정했다. 가칭 한국IMT2000 동기식은 적격으로 판정되지 않아 허가 대상으로 선정하지 않게 됐다. 동기식 사업자 선정은 사업자 간의 이익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최대한 조기에 선정할 것이다. 심사기준상의 관련조항을 개정 공시하고 2001년 1월 평가 심사를 완료해 선정할 예정이다.

△석호익 국장=심사위원은 기관 등에서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관련업체의 용역이나 사외이사 경력이 있는 사람은 제외했다. 그 분야 박사들을 뽑았다.

-그동안 동기식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동기식 사업이 잘 활성화된다고 보는가. 또 사업자 선정에 정통부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나. 인력양성, 서비스 등은 심사위원 주관이 개입된 것이 아닌가.

△안 장관=산업의 균형 발전을 위해 국내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이익도 늘리고 국제 경쟁력을 가져 해외진출을 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다. 이번 결과에서 동기식 사업자가 선정이 안 된 것은 유감이다. 이른 시간 내에 동기식 사업자를 선정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 다시 한 번 정부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현 상태에서 동기식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 서비스 품질 목표 설정, 인력양성보다는 IMT 기술 기여도, 시스템 고장, 기존 인프라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등의 항목이 선정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정통부는 공정하게 심사하기 위해 청와대 등 정부기관에 먼저 보고하지 않겠다고 했다. 언제 보고했는가. 또 심사위원들은 어떤 일정으로 선정작업을 했나.

△안 장관=오늘 10시에 관계기관에 동시에 보고했다.

△심사위원=심사에 들어가기 전에 기준에 대한 확실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속자료, 심사계획서 2개만 가지고 공정하게 심사했다. 심사위원은 전문가로서 책임있게 심사했다. 심사 과정 중 처음은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책꽂이 하나가 찰 정도의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시간이 많이 걸렸고 모임도 많이 가졌다. 후반부에서는 서로 만나는 것을 자제하고 각자 전문지식을 이용해 공정하게 심사했다.

-동기식 사업자가 선정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비동기식에서 떨어진 LG글로콤이 동기식에 신청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예정인가.

△안 장관=동기식인지 비동기식인지는 마케팅이나 경쟁력에 중요하지 않다. 콘텐츠와 값싼 서비스를 누가 하는지가 중요하다. LG글로콤이 동기식 사업자 재선정에 신청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지금 답변하지 않겠다. 3세대 이동통신은 복잡한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므로 기술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통부가 IMT2000 사업자 심사결과를 발표하자 업계는 희비가 엇갈렸다.

사업권을 획득한 SK IMT는 하루종일 축제 분위기에 젖었다. 손길승 그룹 회장(현 명예회장)과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현 고문), 조민래 추진본부장(현 코원에너지 대표), 조신 상무(연세대 교수)와 IMT2000사업추진단 관계자 등 100여명은 서울 종로구 서린동 본사 21층 강당에서 케이크를 자르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쁨을 나눴다.

한국통신 IMT는 경기도 분당 한국통신 본사 5층 상황실에서 선정 사실을 듣고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퇴임을 앞둔 이계철 사장(방송통신위원장 역임)은 사무실에서 TV로 결과를 지켜봤고, 남중수 본부장(KT 사장 역임, 현 대림대 총장)은 정통부 청사로 나가 결과를 확인했다.

사업권 획득에 자신감을 보였던 LG글로콤은 예상을 뒤집는 충격적인 결과에 말문을 닫았다. 이날 LG트윈스빌딩 서관 16층 사업추진단 사무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침묵만 감돌았다.

동기식 사업권을 신청했다 떨어진 한국IMT2000사업추진단도 “이럴 수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일부 직원은 과락 기준인 70점에 훨씬 못미치는 점수를 받은 데 대해 “정말 너무하다”며 불만을 터Em렸다.

LG글로콤은 12월 20일 `사업자 선정 문제점`이라는 반박자료를 발표하고 심사위원별 채점표 공개와 심사위원들이 참여하는 공개 설명회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정통부를 향해 돌직구를 날린 셈이다. 이에 대해 정통부는 “사전에 심사기준을 발표했고 점수까지 공개한 이상 공개설명회는 의미가 없다”며 거부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비동기식 사업자 선정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정통부 앞에 또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기식 사업자 선정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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