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멍들어가는 `스탠더드 셰이핑`

절대 다수의 고객을 특정 기업의 독창적인 비즈니스나 기술방식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 이로써 후발 주자로 하여금 그들이 선도한 기술·서비스 방식을 따르도록 강제화 하는 힘을 `스탠더드 셰이핑(Standard Shaping)`이라 한다. `스탠더드 셰이핑`은 기술 특허나 시장 파괴적 거래를 통해 시장 진입을 완전 봉쇄하는 것과는 상이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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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대표적 사례다. 애플이 아이폰에 아이콘 배열방식의 터치 UX(User Experiance)를 적용한 이후 대부분 스마트폰은 같은 인터페이스를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기존 독자적 방식을 고수한 블랙베리는 결국 지구상에서 종적을 감출 위기에 처했다.

영상 산업 분야에서도 스탠더드 셰이핑의 좋은 예가 있다. 과거 비디오(테이프, VCR) 시장에서 VHS방식은 BETA방식보다 기술적 열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가격 기반의 마케팅 역량을 발휘해 비디오 테이프 시장을 장악했다. 이후 고객은 VHS방식의 VCR을 구매하게 됐고, 소니의 BETA방식은 기술을 선점하고도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맛봐야 했다.

이렇듯 스탠더드 셰이핑에 성공한 기업은 선도자의 기득권(First Mover Advantage)을 활용, 비교적 오랫동안 비약적 성장을 거듭하곤 한다. 이에 반해 선도력을 가진 기업이 자신만의 기술력을 과신하다가 후발 주자의 모방된 기술과 고객가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치밀한 마케팅에 눌려 시장을 고스란히 내어준 사례도 꽤 흔하다.

영원한 강자도 패자도 없는 경쟁 시장에서 스탠더드 셰이핑에 의해 진화하는 시장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가끔은 진화를 거듭하는 경쟁시장에 변종 상품의 출현으로 인해 그간의 건전한 시장 생태계가 황폐화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일례로 이동통신사업자가 출혈 마케팅 수단으로 LTE 스마트폰의 특정요금제에서 대량의 방송 콘텐츠를 무료화, 패키지로 제공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이용자로 하여금 `콘텐츠는 공짜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정당화시키고, 결국 콘텐츠 시장 자체를 황폐화시키는 생태계 파괴를 낳는다.

최근 대형 마트가 마켓 플레이스를 이용해 알뜰폰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일도 스탠더드 셰이핑의 한 사례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초기부터 알뜰폰의 지나친 가격 출혈을 통해 본업의 유통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려운 면이 크다.

이는 알뜰폰 본래의 취지인 경쟁활성화를 통한 알뜰폰의 서비스 진화 촉발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50여년 전 찰스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기원(the origin of species)`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변이를 통해 진화한다는 것과, 그 진화는 보편적인 현상이어야 한다”라며 인류 생태계의 진화론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이론이 비단 자연과학 분야뿐만이 아닌 인문사화과학 분야에서도 널리 인용되고 있는 것은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의 진화는 이상한 변종이 아닌 정상적인 변이에 의해 보편적인 현상에 기초하여 진화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출혈적이고 시장 파괴적인 마케팅 전략은 어느 한 변종의 진화를 촉진할지는 모르지만 주변 생태계 전체를 파괴하는 `문제적` 돌연변이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방송통신 시장이 스탠더드 셰이핑의 건강한 변이에 의해 보편성을 바탕으로 융성하게 진화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변동식 CJ헬로비전 대표 dsbyun@cj.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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