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글로벌 화학기업들의 반발이 국제통상 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산업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제정하겠다고 밝히고 협의체도 꾸려 의견조정에 들어갔지만 논란의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6일 일본 현지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달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될 2013년 3차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기술장벽(TBT) 위원회에 우리나라 화평법에 관한 안건을 상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화학공업협회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자국 기업들이 과도한 화평법 규제로 피해볼 것을 우려해 경제산업성에 문제제기하는 등 산업계의 여론이 악화된 탓이다.
이미 지난 6월 2차 TBT에 미국이 화평법을 특정무역현안(STC)에 올린 바 있다. 기업 부담 가중과 정보 유출이 주된 이유였다. 미국은 올해 우리 국회를 통과한 화평법이 2010년 입법예고됐던 안보다 규제가 심해진 점을 지적했다.
앞서 미국은 입법예고된 정부 안에도 몇 차례에 걸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다만 법을 보완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의지가 받아들여지면서 갈등으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올해 화평법이 등장하자 다시 한 번 STC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또 다시 화평법을 STC로 간주해 TBT 위원회에 상정하면 동일 사안이 계속 국제 문제로 번지는 꼴이어서 우리나라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악의 상황은 이를 무역장벽으로 보고 WTO에 제소되는 경우다.
설사 WTO 제소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전히 한국에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WTO에서 회원국들이 TBT위원회에 같은 사안을 계속 문제제기하면 국제 협력에 소홀한 국가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해외 기술 장벽으로 피해를 겪더라도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 충분히 연출될 수 있다. 특히 일본 화학 업계에서 한국은 중국에 이은 2위 수출 국가인 만큼 일본 정부의 강력한 문제제기가 예상된다.
해외 산업계 이익단체들도 화평법에 대해 그동안 강력하게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환경부가 지난 달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서울재팬클럽(SJC) 회장단과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진화에 나섰던 것도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또 시행령에 연구개발(R&D)용 물질 등록면제, 소량 물질 신고 간소화 등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겠다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물질과 신규 물질 등록 부담, 정보 유출 우려가 해소되지 않아 업계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미 미국이 문제제기를 한 상태지만 현재 환경부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담은 시행령을 제정 중이어서 향후 분쟁으로까지 이어질지 예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