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다 퇴직한 엘머 크리핀(70) 씨는 최근 한 자동차 부품 가게에 입사 지원했다가 거절당했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새로 찾는 일자리마다 컴퓨터 활용 능력을 요구했다. 크리핀 씨는 컴퓨터 사용법을 알고 싶지만 이런 얘기를 논의할 기회조차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면서 연령과 인종, 경제력에 따라 발생하는 `디지털 격차`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세계 최강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19일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오랜 기간 인터넷 보급률 확대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성인 다섯 중 한 명은 인터넷을 쓰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부터 70억달러(약 7조8000억원)를 디지털 격차 해소에 투자했다. 산간벽지까지 유무선 인터넷 시스템을 설치했다. 그 결과 미국 가정의 98%가 어떤 형태로든 고속 인터넷을 쓸 수 있지만 집이나 직장, 학교에서 인터넷을 쓰지 않는 성인은 전체의 20%에 달한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년층의 인터넷 사용률 증대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65세 이상 노년층에서 인터넷 사용 비율은 절반을 약간 웃돈다. 65세 미만에서는 75%로 확 올라간다.
인종과 경제력 차이에 따라서도 불평등이 존재한다. 미국 상무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미국 백인 가정의 76%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반해 아프리카계 미국 가정은 57%은 그친다. 대학 공부를 했고 연 수입 5만달러(약 5600만원) 이상인 사람들의 인터넷 사용률은 더 높았다. 지역별로 보면 빈곤층이 많은 남부 지방에서 인터넷 사용률이 낮았다. 특히 미시시피와 앨라배마 인터넷 사용률이 가장 낮았다.
문제는 2009년 이후 이 수치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외형적 디지털화에만 신경 쓴 나머지 소외받는 디지털 주변인을 위한 대책은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70억달러 중 5억달러(약 5600억원)를 인터넷 교육에 투자했지만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정책 전문가들은 미국인 6000만명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제대로 쓸 줄 몰라 구직과 정부, 의료, 교육서비스에서 손해를 본다고 주장한다. 대다수 고용주가 오프라인으로는 입사 지원서조차 받지 않아 인터넷을 쓰지 못하면 채용 시장에서 철저하게 소외된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몇몇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저소득자를 위해 인터넷 서비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최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 컴캐스트는 2년 전부터 저속득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을 매달 10달러(약 1만1000원)에 제공하는 `인터넷 에센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정치·경제 전문 분석기관 조인트센터 존 호리건 수석연구원은 “온라인에서 처리되는 업무가 많아질수록 디지털 소외 계층은 더 많아질 것”이라며 “정보화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인터넷 사용률 격차 현황
자료:뉴욕타임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