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화학물질사고, 예방을 위한 기반 조성부터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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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따른 화학사고가 발생하자 국회와 정부는 화학물질의 안전사용을 위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대한 법률(이하 화평법)`과 화학물질의 체계적인 관리와 화학사고 예방을 위한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을 지난 7월에 연이어 제정 공포했다.

하지만 산업계는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고예방을 위한 근본 대책과 지원 없이 관리 요건과 처벌 규정만 강화하고 있는 정책방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화관법은 화학사고 장외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세부조항 위반에 따른 영업정지 처분과 이에 갈음하는 과징금을 사업장 매출액의 5%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2012년 산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이 매출 대비 4.8%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기업의 존폐가 달린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 화학기업의 98%가 종업원 5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다. 이처럼 영세한 기업의 화학물질 안전관리 역량은 충분하지 않고 화학사고 위험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정부는 강력한 제재에 앞서 중소기업의 화학물질 안전관리 역량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의 자체적인 화학물질 안전관리 기술 개발과 보급, 환경규제 대응 및 안전 전문 인력 양성 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새로 제정된 화평법은 2015년부터 모든 신규화학물질과 연간 1톤 이상 제조·수입·판매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매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또 신규물질과 함께 등록대상 기존화학물질은 제조·수입 전에 등록해야 한다. 이 같은 물질을 등록하려면 46개 항목에 대한 시험결과를 제출해야 하는데, 등록비용은 물질별로 다르긴 하지만 1개당 최소 600만원에서 최고 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시험분석을 위한 국내 기반도 매우 미흡하다. 46개 항목 중 3개는 시험기관이 1군데에 불과하고, 17개는 아예 관련 시험 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국내에서 시험이 불가한 항목을 해외 기관에 의뢰할 경우, 기업들은 최고 2~5배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화학물질 유해성 평가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자립기반 확충을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이 더더욱 시급하다. 이를 통해 규제 대응 기업을 지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고부가 서비스산업의 육성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법의 도입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사고 예방을 위한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징벌적 사후규제만 강화하고 규제이행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면 최근 대내외적인 경제환경 및 경영여건 악화 속에서 자칫 기업의 경영의지를 꺾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2개월 넘었지만, 산업계 규제이행을 위한 뚜렷한 정부 지원책은 발표된 바가 없다. 강력한 규제는 세계적인 흐름을 볼 때 우리나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경제상황과 기업의 경영여건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과도한 규제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은 기업들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기업의 존폐와도 직결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화평법이나 화관법 시행과 관련된 산업인프라에 대한 투자와 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으로 화학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새로운 서비스산업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박태진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 tjpark@korch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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